ADVERTISEMENT

문재인 정부 ‘덕출이’ 전성시대…주경야독 신화 활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정부에서 ‘덕출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덕출이는 금융권에서 덕수상고 출신이 스스로를 칭하는 정겨운 표현이다. 상고(商高)라는 꼬리표를 떼고 2007년 3월 ‘덕수고’로 새 출발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전통의 명문이자 야구를 잘하는 덕수상고를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덕수상고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덕수상고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덕수상고가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에 진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차관급)에 반장식 전 기획예산처 차관을 임명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미 임명된 상황에서 덕수상고 출신이 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일자리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김 부총리는 덕수상고 63회로 61회인 반 수석에 비해 2년 후배다. 행정고시 역시 반 수석이 21회, 김 부총리가 26회로 5년 선배다. 덕수상고를 나온 고시 출신의 모임인 ‘고덕회’에서도 인연을 쌓은 이들은 야간대학인 국제대에서 주경야독을 했다는 점도 같아 닮은꼴로 통한다. 게다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까운 ‘변양균 라인’으로 분류된다는 것도 같다.

이들이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자리 정책을 이끈다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일자리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인사 역시 덕수상고 출신의 이용득(62회) 의원이다.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 의원은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을 맡고 있고, 국회 환경노동위원이기도 하다. 이 의원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일자리 정부의 안정적 국정운행을 위해 조속한 노동부 장관 임명이 필요하다”고 적기도 했다. 결국 당ㆍ정ㆍ청의 일자리 정책을 덕수상고 출신의 ‘덕출이’가 주도하게 된 셈이다.

덕출이는 법조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16일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된 조재연 변호사는 덕수상고 62회로 이용득 의원과 동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성균관대 법대를 야간으로 다니면서 법조인의 꿈을 꿨고, 1980년 대학을 졸업한 해에 사법시험 22회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판사로 11년간 근무한 뒤 199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검사 출신으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특검보로 활약한 박충근 변호사 또한 덕수상고 64회 졸업생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수장까지 오른 주형환 장관은 덕수상고 68회로 이들에 비해선 가장 어린 후배다. 주 장관은 백운규 장관 후보자가 임명이 되면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지난해 1월 덕수상고 총동창회 신년교례회 때는 주 장관과 박충근 변호사가 ‘장한 덕수인상’을 함께 받기도 했다.

덕출이의 원조 격인 금융권에서도 최근 다시 덕수상고가 주목을 받고 있다. 올초 금융권 정기 인사에서 신한은행의 최병화ㆍ진옥동 부행장, KEB하나은행의 정정희 부행장, KB국민은행의 김기헌 부행장, 기업은행의 서형근 부행장 등 ‘은행원의 꽃’으로 불리는 부행장 자리에서 덕출이가 두각을 나타내면서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에만 덕수상고 출신이 2000여명이 근무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덕수상고가 전통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한 까닭은 1960~80년대 가정 형편은 좋지 않지만 공부는 잘하는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입학했기 때문이다. 당시로선 가난한 집안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대학 입학 대신 금융권 취업이 보장된 덕수상고를 나오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게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금융권에서 계속 일한 졸업생이 많았고, 공부에 목마른 사람들은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꿈을 키워 관계와 법조계 등 다른 분야로도 진출했던 것이다.

정치권에선 김대중 정부의 목포상고, 노무현 정부의 부산상고, 이명박 정부의 동지상고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선 덕수상고가 상고 출신 전성시대의 명맥을 잇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