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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휴머노이드의 인간 대체, 과장된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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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의 4차 산업혁명

“아, 이게 뭐야.” 처음엔 실망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로봇의 기본 골격을 설계하고 로봇의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관절)를 만드는 로보티즈를 방문했을 때였다. 해외에도 제법 알려져 있는 회사라니 사람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날 거란 상상을 해봤지만 그런 로봇은 아직 없었다. 로봇 전시관에서 만난 로봇은 장난감 크기의 모형들뿐이었다.

사람 능가할 로봇 안 나오지만 #생활 속 빠른 진입 엄연한 현실 #로봇 시장 연평균 15%씩 성장 #한국 수요 취약, 경쟁력 떨어져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비록 장난감처럼 작지만 춤추는 로봇들은 음악에 맞춰 정교하게 춤을 췄다. 팔다리의 관절이 유연하게 움직여 흡사 사람 같았다. 춤추는 로봇에 이어 나타난 공 차는 미니 로봇 OP2 역시 첫눈에 실망스러웠다. 다만 두 발 걷기, 색깔 구별, 스스로 일어나기 등 인조인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앞 또는 뒤로 자빠뜨려도 금세 무릎과 허리 관절을 이용해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더 큰 로봇, 진짜 로봇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래서 만난 것이 ‘똘망(Thormang)’이라 불리는 소년 키 높이의 로롯이다. 센서를 장착해 사람처럼 걸을 수 있다. 로봇 개발 붐이 일면서 로보티즈에는 OP2와 똘망 같은 로봇 플랫폼(기본 골격)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완제품 제조사들은 용도에 맞게 다양한 로봇을 제작한다.

사람 같은 로봇을 만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지만 로보티즈에서 만난 방문객들은 로봇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핀란드에서 온 미디어 예술가 티모 라이트는 “이 회사는 해외에서도 유명하다”며 “로봇 개발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러 왔다”고 말했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순천여고 학생들이 학습용 로봇을 체험하러 로보티즈에 몰려든 것도 로봇에 대한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런 로봇 열풍은 지난해 1월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이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로봇공학·사물인터넷(IoT) 활용이 본격화하면서 2020년까지 일자리 500만 개가 없어진다”고 예측하면서 본격화됐다. 이는 즉각 로봇에 대한 관심과 공포감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올 3월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로봇공학 콘퍼런스에서 웨어러블 로봇에 올라타 “기분이 최고”라고 말한 것도 로봇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는 영화 ‘에일리언’에서 여전사 역할을 했던 시고니 위버인 양 높이 4m에 무게 1.6t의 이족 보행 로봇의 팔을 원하는 대로 움직여댔다. 메소드-2로 불리는 이 로봇은 개발이 완료되면 대당 100억원에 판매될 예정이다. 더구나 제조사가 국내 토종기업 한국미래기술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더욱 증폭됐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과연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그렇게 많이 빼앗을 수 있는가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나타난 것들만 봐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사람이 로봇과 나란히 면접을 보고 사무실에 앉아 경쟁적으로 일할 가능성은 적어도 100년 이내에는 없을 것 같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01년 개봉한 영화 ‘AI(인공지능)’는 16년 전 영화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상상력이 충만한 스토리다. AI를 탑재한 데다 흡사 사람 모양을 한 로봇(휴머노이드)을 공장에서 콜라병 찍어내듯 만들어내는 미래를 배경으로 했다. 영화 속 로봇회사 사이버트로닉스는 최초로 감정을 가진 인조인간 데이비드를 탄생시키고 가정집에 이를 입양시켰지만 결국 진짜 아들과 차별당해 버려지게 된다.

현실은 이 같은 상상과는 딴판이다. 베저스가 운전했던 로봇은 인간이 들어가서 작업할 수 없는 위험한 공간까지 근접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수 로봇이다.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여지는 크지 않다. 이 로봇이 데이비드나 터미네이터가 되려면 사람 뇌 같은 인공지능은 물론 자체 구동이 가능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일 뿐이고, 그나마 전력 케이블로 연결돼 멀리 갈 수 없다.

지난달 20일 서울 가산동 로보티즈 사무실에서 김병수 대표가 인간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로보티즈는 차세대 로봇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지난달 20일 서울 가산동 로보티즈 사무실에서 김병수 대표가 인간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 똘망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로보티즈는 차세대 로봇 플랫폼으로 세계 시장에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물론 로봇의 위협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은 아니다. 인간형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아직 멀었지만 제조용 로봇은 이미 일자리를 많이 잠식했다. 그럼에도 로봇이 무한정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을 것 같다. 로봇은 제조용에서 출발해 서비스 로봇으로 진화하는데 지금은 과도기에 있다. 이 단계에서는 제조용 로봇이 고도화하고 서비스 로봇이 본격적으로 실용화하기 시작한다(로보티즈 김병수 대표).

사람의 일자리는 이 과정에서 위협을 받는다. 제조용 로봇이 더 고도화되면서 공장 자동화 속도가 빨라져 생산직 근로자의 일손은 덜 필요해진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버는 회사는 스웨덴 ABB와 일본 화낙(FANUC) 같은 제조용 로봇 회사들이다. 물론 이들 회사도 무한정 미래가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제품 수요가 있어야 공장에서 로봇도 늘릴 텐데 지금의 인구증가율과 소비증가율로는 폭발적인 수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로봇시장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고 연평균 15%씩 성장하고 있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2014년 167억 달러에서 2018년 32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EU)은 자체 수요가 있어 유리하지만 한국은 국내 수요 기반이 취약하고 로봇 전문 기업도 부족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앞으로 로봇시장 성장의 관건은 로봇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가에 달려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돕는 상호보완적 역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에게 쉬운 것은 로봇에게 어렵고, 인간에게 어려운 것은 로봇에게 쉽다고 간파한 미국의 로봇 공학자 한스 모라베크가 만들어낸 ‘모라베크의 역설’이다. 로봇은 알파고처럼 천문학적 단위는 쉽게 계산하지만 바둑판에 부드럽게 돌을 놓지는 못한다.

최근 구글이 로봇을 만드는 자회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일본 통신사 소프트뱅크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성찰의 결과로 보인다. 구글은 그간 이족에 이어 4족 보행 로봇 와일드캣을 비롯해 다양한 로봇을 만들어 왔지만 로봇 사업을 접었다. 로봇이 사람처럼 걸어다닐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다만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는 “2040년이면 스마트 로봇이 인류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동호논설위원

김동호논설위원

어떤 경우든 로봇은 인간을 돕는 수단일 뿐이다. 로봇이라는 단어는 인간 대신 일해 주는 노예라는 뜻을 가진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그러니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은 만화나 영화 속에서 존재하는 꿈과 상상의 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4차 산업혁명으로 로보타들은 공장이든 가정이든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의료·안전·군사 등 전문 서비스에 이미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일상과 멀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애완견 로봇이나 말벗 로봇처럼 개인서비스 로봇도 차츰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