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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짓던 중 공론조사 드문 일, 절차 험난해질 수밖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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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왼쪽) 옆에 공사 중이던 5, 6호기 건설 현장의 28일 모습. 전날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울산=송봉근 기자]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왼쪽) 옆에 공사 중이던 5, 6호기 건설 현장의 28일 모습. 전날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공론화 작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울산=송봉근 기자]

정부의 '탈(脫) 원전' 정책을 실행할 '솔로몬의 지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큰 갈등을 불러올 혼돈의 용광로가 될 것인가.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파문 #전문가 "북유럽서 하는 공론조사 #대부분 향후 지을 시설에 대한 토론" #정부 주도 아닌 주민 자발적 활동 #최종 중단 땐 6조원 손실 주장 나와 #정부 추정 2조6000억원과 큰 차이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원자력 발전소의 건설 여부를 공론화위원회와 시민배심원단을 통한 ‘공론조사’에 맡기기로 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에서 공론조사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위해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동도 못하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10월에서야 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위원회는 20개월 간 국민 의견을 수렴해 사용 후 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 뒤 2015년 6월 30일 운영을 종료했다. 권고안은 사용 후 핵연료장 마련에 대한 원칙만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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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의형 여론조사라고도 불리는 공론조사의 개념을 고안한 건 미국 스탠퍼드대 제임스 피시킨 교수다. 실제 활용은 북유럽이 처음이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덴마크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 결정을 위해 ‘합의 회의’라는 제도를 운용해왔다. 발전소와 쓰레기처리장, 하수종말처리장 등을 짓는 문제를 놓고 공론조사를 활용했다.
이번에 정부가 진행하는 공론조사 방식은 선진국에서 활용한 전통적인 공론조사 방식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북유럽 등에선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토론의 장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정부와 기피시설 사업자 등이 관련 사안의 정보와 구체적인 배상 방안 등을 제시했다. 정부가 주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나서는 한국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더구나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공론 조사는 이미 시작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점이 다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북유럽 등에서 벌인 공론조사는 대부분 향후 건설할 시설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미 공사에 들어간 시설에 대한 공론조사는 드문 사례로 절차와 시간이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은 이미 28.8%나 된다. 지역주민과 건설 관계자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히 얽힌 상태다. 정부가 참조하겠다고 밝힌 ‘독일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 활동은 핵폐기장을 건설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였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영구 중단할 경우 생기는 손실 비용에 대한 규모에 대해서도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추정하는 총손실 규모(매몰비용)는 2조 6000억원이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27일 브리핑에서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 6000억원에 보상 비용을 합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역 상생 지원금 집행 중단 1500억원, 지역 건설 경기 악화와 민원 발생 비용 2700억원, 법정 지원금 중단 1조원, 지방세수 감소 2조2000억원 등 총 6조~6조2000억원의 직간접 손실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같은당 정유섭 의원은 신고리 5·6호기가 생산할 전력을 다른 발전방식으로 대체할 경우 발생할 추가 비용을 따졌다. 지난해 발전원가는 원자력이 1㎾h 당 5.53원으로 석탄 35.35원, LNG 80.22원, 신재생 228.85원보다 저렴했다.
이 단가 차이에 신고리 5·6호기의 설비용량(2800㎿)과 7차 전력수급계획(2015~2029년)에 따른 연간 원전 평균이용률(84.87%), 1년간 총 발전시간(8760시간)을 곱하면 추가 부담액을 추산할 수 있다는 것이 정 의원 주장이다. 정 의원은 신고리 5·6호기가 담당할 전기 생산을 전부 신재생발전으로 대체하면 최대 4조6488억원이 더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석탄발전으로 대체하면 6201억원, LNG발전으로 대체하면 1조5548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전망이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근거한 단순 추정치라고 반박한다. 향후 전력 수요가 변화하거나 신재생에너지 기술발전 등 미래의 여건 변화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방사능 오염과 원전사고 위험, 방사성 폐기물 관리비용 등을 감안하면 원전을 건설해 드는 비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수급 문제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2031년까지의 전력수급 계획인 8차 전력수급계획을 올해 말까지 완성할 것”이라며 "전력수급에 불안감이 생기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 국회 보고 등을 통해 국민과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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