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바람 피했다'...하늘도 도왔던 김국영의 한국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국영이 27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포효하고 있다. [사진 대한육상연맹]

김국영이 27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포효하고 있다. [사진 대한육상연맹]

 지난 27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 코리아오픈 국제육상대회에서 한국 육상 사상 처음 100m 10초00대 기록이 작성되는 순간, 관중석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절치부심 끝에 10초07이라는 기록을 전광판에 새긴 김국영(26·광주광역시청)은 팔을 휘저으면서 자신의 대기록 순간을 온 몸으로 느끼고, 환호했다.

간절함 통했을까...부정출발 악재+날씨+환경까지 도운 대기록 #머리 맞댄 국내 스태프, 역발상 훈련으로 기록 단축에 큰 도움 #'내가 빨라지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9초대 진입 향해 뛴다

말 그대로 간절한 마음 속에서 나온 쾌거였다. 김국영은 이틀 전, KBS배 전국육상대회 준결승에서 10초13을 기록하고 2015년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100m 한국 기록(10초16)을 1년 11개월 만에 경신했다. 그러나 김국영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바로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릴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는 기준 기록(10초12)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기록을 넘지 못한 김국영은 "이 순간은 빨리 잊었다. 다음 시합에 100%를 발휘할 것이다.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국영은 코리아오픈에서 자신의 기량을 모두 쏟아냈고, 10초 초반 기록을 냈다. 이틀 만에 경신한 한국 기록으로 런던 세계선수권 출전권까지 확보한 김국영은 "리우올림픽 실패(예선 탈락) 후에 이 갈고 준비했다. 열심히 하면 다시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이런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국영 연도별 기록

김국영 연도별 기록

27일 비가 흠뻑 내려 땅이 젖은 정선종합경기장. 정선=김지한 기자

27일 비가 흠뻑 내려 땅이 젖은 정선종합경기장. 정선=김지한 기자

악재도, 바람도, 비도 피해갔다

사실 김국영의 이날 기록엔 '천운(天運)'도 따랐다. 김국영은 이날 결승 레이스에서 한 차례 부정 출발로 타이밍이 빼앗겼다. 자신의 바로 옆 레인에 있던 강의빈(국군체육부대)이 부정 출발로 실격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부정 출발이 김국영을 도왔다. 김국영의 레이스를 지켜봤던 장재근 화성시청 감독(200m 한국 기록 보유자,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은 "당시 레이스 직전에 앞바람이 좀 세게 불었다. '아차' 싶었는데, 부정출발 판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장 감독이 말한 '바람'은 이날 대기록의 최대 변수였다. 이미 김국영은 이틀 전 바람 때문에 고개를 떨궜다. 당시 10초07을 뛰었는데도 공인 기록 기준 풍속(초속 2.0m 이하)이 초속 3.6m로 나와 공인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김국영은 차분하게 다시 출발선에 섰고, 스타트 총성이 울리는 순간 힘차게 결승선을 향해 내달렸다. 이틀 전 KBS배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10초07을 기록했지만 육상 관계자들과 관중들은 '바람, 바람'을 외쳤다. 너도 나도 초속 2.0m 이하가 나오길 바라던 순간, 전광판엔 초속 0.8m가 한 쪽에 찍혔다. 조마조마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환호로 바뀌었다. 이 순간에도 '천운'이 뒤따랐다. 장 감독은 "선수가 레이스를 달리는데 불리한 앞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레이스 직전에 그 바람이 뒷바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레이스를 치르고 약 2시간 뒤에 정선 종합경기장엔 장대비 같은 소나기 비가 내렸다. 현장에 있던 육상인들은 "국영이가 한국 기록을 내기로 하늘에서 점지해준 날인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장 감독도 "국영이가 실력이 좋으니까 운도 생기는 것"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김국영은 "100m는 육상의 어떤 종목보다 예민하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경기 당일의 그라운드 컨디션, 바람, 날씨 모든 게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날씨 운도 좋았지만 경기장 조건도 김국영의 기록을 도왔다. 김국영은 "정선 트랙이 (주훈련지였던) 광주 트랙 못지 않게 잘 맞았다"고 말했다. 정선 종합경기장의 트랙은 우수한 탄력으로 국제 공인을 받으면서 단거리 선수들의 전력질주에 큰 도움을 주는 '몬도(mondo)' 트랙으로 알려져있다. 또 정선 종합경기장이 해발 300~400m 지대에 위치해 일반 평지보단 상대적으로 낮은 기압에 공기저항이 적은 것도 김국영의 질주에 도움이 됐다.

25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에서 100m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김국영. [사진 대한육상경기연맹]

25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에서 100m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김국영. [사진 대한육상경기연맹]

국내 스태프진이 이룬 성과, 9초대 목표 '김국영 프로젝트'

김국영의 10초00대 진입은 국내 스태프들 간의 의기투합을 통해 이뤘다는 면에서 그 의미도 컸다. 지난 2015년 초, 김국영을 영입한 광주광역시청 육상팀의 심재용 감독은 단거리가 아닌 중거리 부문인 400m 훈련을 소화시키는 등 '역발상 훈련'으로 기량을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 김국영은 중장거리 훈련을 통한 근지구력, 체력 강화로 중후반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약점을 어느정도 극복했다.

심 감독은 2016 리우올림픽 예선 탈락 후 해외 훈련을 생각했던 김국영을 국내에서 키우면서 훈련에 집중하도록 했다. 심 감독은 "실패 후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우리끼리 해도 충분히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미 2015년 일본 쓰쿠바대학교에서 훈련하면서 몸에 익혔던 주법을 더욱 세심하게 가다듬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팔을 간결하게 흔들며 보폭을 늘린 주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선 허들 육상 국가대표 출신이자 같은 소속팀 박태경 플레잉코치의 조언도 큰 힘이 됐다. 김국영은 "태경이형이 자신의 훈련 시간을 마다 하고 많은 도움을 준다. 태경이형도 일본에서 훈련하면서 몸 만드는 법을 잘 알기에 실제적인 면에서 조언을 많이 해준다"면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걸 스스로 느꼈다. 그래서 (기록이 안 나오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진 김국영 인스타그램]

[사진 김국영 인스타그램]

김국영은 평소 100m 실전 훈련을 하지 않는단다. 대신 스스로 훈련을 통한 몸상태를 점검하면서 대회에 기록한 자신만의 목표 기록을 세운다. 물론 그가 추구하는 최고 기록은 9초대다. 그는 "(10초07을 기록한) 이번 레이스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었다. 조금만 더 보완하면 9초대 기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심 감독도 "중후반이 강해지면서 오히려 강점이었던 스타트가 약해진 건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은 앞으로 더 보완해서 내년엔 실제로 9초대 기록에 도전해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아시아, 세계와 경쟁하려는 이른바 '김국영 프로젝트'의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지난 4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가 가면 길이 된다. 내가 빨라지면 대한민국이 빨라진다'고 적은 김국영의 목표는 한층 앞당겨진 기록만큼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선=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