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웜비어 석방에 전직 미 대통령 방북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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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7개월간 억류했다가 석방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등 4명의 미국인 억류자 신병 처리 문제를 놓고 한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측에 전직 대통령을 특사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전직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 북한 소식통 인용해 보도 # 유엔대표부 북미 뉴욕채널 등 통해 # “전 대통령 보내면 문제 해결된다” # 아들 부시를 특사로 염두에 둔 듯 # 트럼프 거부...대북정책 대표 보내

이에 따르면 북한은 유엔 대표부를 통한 북ㆍ미 뉴욕 채널과 외무성 최선희 북미국장의 대미 접촉 등을 통해 전직 미 대통령의 파견을 요구했다. 북한은 전직 대통령의 구체적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2001~2009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오토 웜비어.

오토 웜비어.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셉 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보내 웜비어만을 데려왔다. 억류된 나머지 3명은 풀려나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 측에 웜비어에 대한 고문 정보가 들어가자 뉴욕 채널을 통해 특사의 방북을 요구했다고 한다. 지난 6일에는 처음으로 웜비어의 혼수상태를 미국 측에 알렸으며 이를 보고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조셉 윤 특별대표에게 의료팀을 동반해 방북할 것을 지시했다.

북한의 전직 미 대통령 파견 요구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권위를 높이면서 미국 측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인질 외교로 풀이된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2009년 로라 링, 유나 리 등 미국인 여기자 2명 억류하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끌어냈다. 두 기자는 김정일의 특별 사면을 받고 클린턴과 함께 귀국했다. 북한 언론은 당시 김정일과 클린턴의 면담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일의 웃는 모습과 클린턴의 송구스러워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 13일부터 5일간 북한을 방문했던 전 미국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 측은 23일 TV 인터뷰에서 자신들도 웜비어의 석방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위 영상). 웜비어는 로드먼이 도착한 당일 미국으로 송환됐다.

로드먼과 함께 방북했던 에이전트 크리스 볼로는 이날 ABC방송에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북한 측에 세 번이나 웜비어 석방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로드먼은 "웜비어의 석방 소식을 듣고 기뻐서 펄쩍 뛰었다"며 "이번엔 김정은을 못 만났지만 지난번엔 만났다. 김정은은 실제로 만나보면 친절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의 한성렬 외무성 부상(차관)이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에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을 만났을 당시 핵ㆍ미사일 문제에 대해 "중국을 관여시키지 말라"로 요구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북한은 당시 "미국의 새 정권과 직접 협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으며, 이는 미 국무부를 통해 트럼프에게 전달됐다. 북한의 이 입장은 김정은 정권이 중국에 불신감을 갖고 있으며 중국이 의장국인 북핵 6자회담이 아닌 미국과 직접 대화를 중시하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아사히는 풀이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서울=이기준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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