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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협박 조직적 문자폭탄, 여론 빌미 위임독재 부를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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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호 01면

[특별 대담] 문자폭탄인가 문자행동인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대거 문자를 보내 공격한다’. 이른바 ‘문자폭탄’이다. 옹호하는 쪽에선 ‘문자행동’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성 부족하고 포퓰리즘 경향 #소수 세력이 국민 빙자해 행동” #“시민의 현안 개입 현상 중 하나 #폭탄과 행동 포함된 폭탄성 행동”

최근 문자폭탄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치권이 뜨겁다. 22일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53건의 문자폭탄을 보낸 발신번호 44개를 추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협박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당도 문자폭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발송자를 처벌하는 별도의 입법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열혈 지지자들에 의한 문자폭탄은 여당 의원도 표적으로 삼는다. 여성 혐오 논란이 일고 있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과 관련해 ‘부적절’ 의견을 낸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쓸데없는 내부 총질하지 마세요”라는 문자폭탄을 받았다. 반면 손혜원 민주당 의원은 “문자폭탄이 아니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 문자행동”이라고 했다. 문자폭탄은 직접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선민정치, 여론과 대의제도, 다양성과 관용 등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윤평중(정치철학) 한신대 교수와 이택광(문화평론) 경희대 교수가 23일 중앙SUNDAY 편집국에서 만나 문자폭탄 현상을 놓고 대담했다.

▶윤평중 교수=“오늘 재미있는 뉴스가 나오더라. 한국당에서 5행시를 모집했는데 조롱하는 내용으로 인터넷이 난리가 났더라. 전자정치의 한 단면이다. 대거 문자를 보내거나 댓글·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도 같은 맥락이다. 기존 공론장을 확대하는 전자공론장인데 장단점이 있다. 촛불시위와 탄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의식이 높아진 주권자들이 현실정치 주요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현상의 일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공백을 보완해 준다. 반면 역기능도 있다. 요즘 일어나는 일은 폭탄임과 동시에 행동이다. 말하자면 폭탄성 행동이다. 폭탄 혹은 행동이라고 이분법적으로 규정하는 데엔 반대한다.”

▶이택광 교수=“민주주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많아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기 때문에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일종의 과잉이다. 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민주적이기 때문에 문자행동이라고 주장하고,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전체주의적인 행동이라 여겨 문자폭탄이라고 한다. 양쪽이 다 맞지만 욕설과 협박 등이 오가는 조직적인 문자는 본질적으로 일종의 사이버 불링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e메일이나 휴대전화, SNS 등을 활용해 특정 대상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행동이다. 10대들이 하는 걸 어른들이 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전화번호가 담긴 앱까지 나왔다. 촛불이 보여 준 민주적·공화주의적 가능성에 반하는 요소다.”

▶윤 교수=“진보 쪽에서 문자·댓글 등이 포함된 디지털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21세기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칭찬은 옳지 않다. 열성 참여자의 대표성 문제가 있고 포퓰리즘적 경향이 공존한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증폭·상승작용을 일으키다 약간만 견해를 달리하면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그 과정에서 인격 모독 등이 횡행한다. 대중영합주의·중우정치 등의 위험성도 있다.”

▶이 교수=“문제는 특정 세력이 국민의 이름을 내건다는 것이다. 신성한 국민의 이름으로 하니까 방법이 일부 폭력적이어도 상관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것인가. 아니라고 본다. 소수의 정치적 그룹이 국민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높은 지지를 받는 박 전 대통령의 정책은 친박이라는 소수에 의해 추진되면서 저항을 받았다. 그 와중에 친위대 그룹이 생겼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자’는 말이 나왔다. 현재 집권당도 여소야대여서 동일한 구도가 펼쳐진다. 지지자 그룹에선 대통령 지키기가 의제가 됐다. 정치는 자본주의·공산주의 같은 이념적 지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이념적 지향이 약화되면서 이제는 정권 획득과 지키기가 명분과 목적이 됐다.”

▶윤 교수=“청문회 의원들에게 대규모 문자를 보내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 있다. 직접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두고 ‘지지도가 높으니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과 여론조사를 동일시하는 게 온라인 직접민주주의라는 주장은 위험하다.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모든 국정 운영을 여론조사로 할 수 없다. 대의제가 설 자리가 없고 정치의 본질이 송두리째 증발해 버리는 중대 사태에 직면한다. 여론이 그렇게 중요하면 여론조사를 하지 선거는 왜 하는가. 여론은 변덕스럽고 감정적일 수 있다. 또한 여론을 빌미로 한 위임 독재가 출현할 수 있다.

▶ 3면으로 이어짐

성호준 기자, 김도연 인턴기자
sung.hojun@joongang.co.kr

“표현의 자유 넘어선 마녀사냥식 폭력, 법으로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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