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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대책 빠진 강남 투기 경고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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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김 장관은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투기수요를 꼽으면서 부처 직원들에게 집값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김 장관은 최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투기수요를 꼽으면서 부처 직원들에게 집값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김현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취임과 동시에 주택 투기와의 전쟁에 나섰다. 이날 김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최근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비롯한 주택시장 과열의 배후로 ‘다주택자’와 ‘20대 이하 투자자’를 지목했다. 실수요자가 아닌 이들이 시장 과열을 부추긴다는 시각이다.

김현미 국토장관 PPT 취임식 #“5채 이상 보유자 매입 급증” #강남 4구 등 강력 단속 예고 #서울 주택보급률 96% 그쳐 #전문가 “공급도 병행해야”

이런 분석에 맞춰 그는 부동산 대책도 ‘투기 수요 억제’에 맞추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 갱신 청구권, 공적임대주택 공급 확대 같은 정책 과제를 강조했다. 지난 19일 나온 6·19 부동산 대책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이다.

김 장관은 이날 취임식장에서 파워포인트(PPT) 슬라이드를 비추며 “지난해 5월 대비 올 5월에 집을 다섯 채 이상 보유한 사람이 강남 4구에서 집을 산 건수가 53.1% 늘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이날 배포한 주택 거래량 자료에 따르면 무주택자와 1주택자가 강남 4구에서 올 5월에 집을 산 건수는 각각 2103건과 1158건으로 9.1%, 4.6% 증가(전년 동월 대비)에 그쳤다.

반면 3주택자(강남 4구 거래 건수 133건), 4주택자(61건), 5주택 이상자(98건)가 강남 4구에서 집을 산 건수는 각각 47.8%, 41.9%, 53.1% 늘었다.

경제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29세 이하가 지난달 강남 4구에서 주택을 구입한 경우는 134건으로 지난해 5월에 비해 54% 늘었다. 이 지역에서 30~50대의 5월 주택 구매 건수는 5.6~13.8% 증가(전년 동월 대비)에 그쳤다. 60대와 70대 이상은 오히려 각각 3.3%, 8.1% 감소했다.

김 장관은 “20대 이하가 올 들어 강남 4구에서 아파트를 많이 산 건 편법 거래를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라고 말했다. 강남 4구의 평균 주택가격은 7억원대다. 그는 “서민과 실수요자가 집을 갖지 못하도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다주택자·젊은 층 주택 거래를 중심으로 정부의 강도 높은 투기 단속이 예상된다. 만약 자녀 명의로 주택을 샀다면 증여세 탈루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김 장관의 시각이 수요 억제에만 기울어 공급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서울 전체는 물론이고 강남 지역의 주택 보급률은 아직 100%가 안 된다.

“20대 이하 강남아파트 구입 늘어 편법거래 의심” 

여전히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 만약 김 장관이 공급 부문을 도외시한 채 수요 억제에만 집중하면 강남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가격은 앞으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주택 공급 계획을 보면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입주 물량이 크게 늘어난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5~2016년 전국에서 대거 분양된 아파트가 올 하반기부터 준공돼 2019년까지 120만 가구가 들어선다. 단독주택 등을 합하면 총 180만 가구가 공급된다. 연평균 60만 가구 정도다. 이는 정부의 2차(2013~2022년) 장기주택종합계획상 연평균 최대 수요인 44만 가구를 초과한다.

하지만 지역별로는 사정이 다르다. 2015년 기준으로 주택보급률이 지방은 106.5%다. 반면 수도권은 97.9%, 서울은 96%에 그친다.

2019년까지 서울의 주택보급률을 100%로 맞추려면 총 35만 가구의 공급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기간(2016~2019년)에 예정된 주택 건설 물량은 25만 가구 정도다.

서울은 새집으로 갈아타려는 수요도 많다. 2015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지은 지 30년 이상 된 아파트가 10가구 중 한 가구꼴이다. 전국 평균은 5.1%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급이 늘어나지 않으면 결국에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불안 심리가 시장에 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를 걷어내고 서민 주거 복지를 향상시키는 정책은 바람직하다”면서 “여기에 더해 지속적인 공급으로 거품을 낳는 열기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김기환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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