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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를 이끈 총리傳(끝)]장성택도 탐낸 북한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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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창 중국 총리는 시진핑 국가주석 다음으로 공산당 정치국 서열 2위다. 리커창은 이 힘으로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전임 총리였던 원자바오는 정치국 서열 3위였다. 사회주의 국가는 정치국 서열이 곧 권력이다. 직책은 단지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

정치국 서열 높아야 '힘'쓰는 총리가 돼 #박봉주,최영림,이종옥은 실세형 총리 #실무형 총리는 경제 실패하면 희생양 #장성택은 김일성 시대의 총리를 꿈꿔 #당시는 노동당 보다 내각에 인재 더 포진 #김정은은 박봉주에게 많은 힘 실어줘

북한도 마찬가지다. 현재 총리인 박봉주는 정치국 서열 4위다. 전임 총리였던 최영림은 정치국 서열 3위였다. 두 사람은 역대 총리 가운데 그나마 총리로서 제 역할을 한 셈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하면서 총리를 했던 두 사람의 재임 기간 동안 북한 경제가 공교롭게도 회복세를 맞고 있다. 장마당(한국의 시장)은 2010년 200여개에서 2015년 400여개로 늘었고 신흥재벌인 ‘돈주’들의 등장으로 경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박봉주 총리(오른쪽 세번째)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다. 박 총리는 오른쪽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사진 화보집 조선]

박봉주 총리(오른쪽 세번째)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맞아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했다. 박 총리는 오른쪽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사진 화보집 조선]

이종옥 총리도 재임시절 정치국 서열 5위였다. 이종옥은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재임하면서 하락기에 접어든 북한 경제를 회생시켜보려고 ‘소방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300%까지 믿는다”고 했던 이종옥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본질적인 한계에는 어쩔 수 없었다.박봉주·최영림·이종옥 등 3명과 항일빨치산 출신 총리였던 김일·박성철을 제외하고 나머지 총리들은 경제 실패의 책임을 지는 ‘희생양’에 불과했다. 강성산·이근모·홍성남·김영일 등 이들의 운명은 그랬다. 정치국 서열이 낮아 눈치를 보거나 김일성·김정일이 시키는 대로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운명이었다. 연형묵 총리는 ‘김정일의 예스맨’ 답게 총리에서 물러난 뒤 김정일 시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북한 총리는 김일성이 언급한 대로 ‘경제사령관’이다. 중국 총리도 마찬가지다. 다만 북한과 중국의 차이점은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로 경제를 국가 주석의 개인 스타일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주로 총리가 이끌었다. 하지만 북한은 1인 지도체제로 총리가 김일성·김정일· 김정은에 주로 휘둘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 있는데 장성택은 왜 사망하기 이전에 내각 총리를 하고 싶었을까? 힘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장성택의 특별군사재판 법정 판결문을 보면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걸음으로 내각 총리 지위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꿈을 꾸었다’고 명시돼 있다.

2013년 12월 12일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 총살된 장성택.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놈은 (김정은의) 계승 문제를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사진 노동신문]

2013년 12월 12일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 총살된 장성택.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장성택놈은 (김정은의) 계승 문제를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고 주장했다. [사진 노동신문]

장성택은 김정은을 경제가 어려웠던 김정일 시대보다 먹고 살 만 했던 김일성 시대로 돌아가도록 하고 싶었다. 김일성은 1948년부터 1972년까지 총리를 겸했다. 당시는 총리를 내각 수상이라고 불렀다.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김일성이 경제 발전을 위해 실무형 인재들을 노동당 보다 내각에 포진시켜 국가를 경영했다”며 “72년 국가주석제를 만들기 이전까지 김일성이 총리를 겸하면서 경제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뉴커스는 탈북민 인터넷신문이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이런 모습을 떠올렸고 총리가 북한 경제를 이끄는 것이 지금의 노동당이 주도하는 것보다 좋을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힘 있는 내각 총리를 맡아 북한 경제의 문제점을 바꿀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끝내 그 꿈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지금 김정은은 박봉주 총리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다.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등 김일성을 제외하고 역대 총리들 가운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까지 겸하게 한 것은 파격적인 대우다.박봉주가 실제로 이런 권한들을 행사하면서 제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 총리와 차이점은 김정은이 박봉주를 경제 현장을 많이 다니도록 하고 언론에도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에 관한 한 박봉주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대신 책임도 지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지금까지 [북한 경제를 이끈 총리]를 사랑해 주신 네티즌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북한 총리는 그 동안 힘이 없는 자리로 알려져 북한 연구자나 국민들의 관심이 덜 한 직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네티즌은 처음 들어보는 총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북한 연구의 다양화와 언제 재개될지 모르지만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때 북한 경제를 이끈 총리들의 이름 정도는 알아 두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입니다. 거듭 네티즌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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