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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지스함 충돌 미스터리…"탐지가 주 임무, 당시 기상도 좋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50여 명의 승조원 가운데 수십 명만 깨어있는 토요일 새벽이었다. 당시 기상은 좋았다.”
지난 17일 새벽 2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이즈(伊豆)반도 앞바다에서 전대 미문의 사건이 일어났다.
‘신의 방패’라 불리는 첨단 무기 체계인 미국 해군 이지스 구축함이 육중한 컨테이너 화물선과 충돌해 치명상을 입고 승조원 7명의 목숨까지 잃은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해군 함정이 사망자까지 낸 충돌 사건은 최근 수십 년 간 보지 못했던 매우 드문 일”이라고 18일(현지시간) 전했다.

기상 좋은데 대수상 레이더 작동 안 했나? #이지스함 항적은 '기밀'…수사 협조 난항 예상 #전문가 "조사 결과 나오려면 1년 이상 걸려" #훈련 중 야간대기 상황…"시동 켠 채 멈춰" #항적·시간 놓고도 미스터리 '1시간 전 충돌설' #

현재까지 일본 해상보안청이 추측하는 사고 원인은 일종의 ‘해상 교통 체증’이다.
하루 400여 척의 선박이 오고 가는 해역으로 항상 사고 위험이 있던 곳이라는 것이다.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사고 인근 해역에서 지난 5년 간 충돌 사고가 3건이나 있었다.

17일 오전 2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초 주변 약 20㎞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 [사진 NHK 캡처]

17일 오전 2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초 주변 약 20㎞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 [사진 NHK 캡처]

그러나 사건의 전말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미 태평양사령부 제7함대 소속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9000t급)은 전날 모항인 요코스카를 떠나 훈련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위치는 이즈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97㎞ 정도 떨어진 해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별히 야간훈련 중인 경우를 제외하면 통상 군함은 심야에는 닻을 내리고 한 곳에 머문다고 한다.
NYT는 이날 피츠제럴드함도 엔진을 가동한 상태에서 멈춰서 있었던 것으로 관측했다.
해군 관계자에 따르면 구축함은 주·야간 구분 없이 대수상 레이더를 통해 근접하는 모든 선박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해군 전단 내에서 적 함정이나 잠수함의 움직임을 먼저 탐지해 알리는, 조기경보 역할을 하는 이지스 구축함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만일 기상 악화라는 특수한 조건에서라면 몰라도 이지스 구축함의 레이더로 화물선의 항적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17일 오전 2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초 주변 약 20㎞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 [사진 NHK 캡처]

17일 오전 2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현 미나미이즈초 주변 약 20㎞ 인근 해상에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과 충돌한 미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피츠제럴드함. [사진 NHK 캡처]

실제 사고 당시 피츠제럴드함에서는 제대로 경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NYT는 “충돌 등 비상상황이 예상되면 갑판에서 크게 알람이 울리고 곧바로 모든 장병이 사전에 정해진 위치에서 비상 조치를 취하게 돼 있다”면서 “충돌로 함장실이 부서지고 브라이스 벤슨 함장이 다쳤다는 것 자체가 사고 직전 긴급 경고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대서양에서 2년간 구축함을 지휘했던 브라이언 맥그래스 미 해군 예비역 함장은 “한밤 중에도 아군이 아닌 다른 선박의 가장 근접한 항적(Closest Point Of Approach)이 약 4.5㎞ 이내라면 즉각 깨우라고 지시한다”면서 “(그런 사고가 났다면) 전적으로 지휘관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피츠제럴드함과 충돌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도 선수 일부가 파손됐다. [AFP=연합뉴스]

피츠제럴드함과 충돌한 필리핀 컨테이너 선박도 선수 일부가 파손됐다. [AFP=연합뉴스]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중요한 열쇠인 사고 시간과 항적에 대한 증언도 엇갈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피츠제럴드함과 충돌한 필리핀 선적 ACX 크리스탈호(2만9000t급)의 항로를 추적한 결과 새벽 2시 5분쯤부터 항로를 틀어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는 충돌 직전인 2시 20분까지의 자기 항적으로 알리는 신호를 통해 파악됐다”고 19일 전했다.
그러나 크리스탈호를 소유한 일본 해운사 닛폰유센 측은 “충돌이 일어난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라면서 “크리스탈호는 충돌 전까지 방향을 바꾼 적이 없다”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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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조사는 미국과 일본이 함께 진행하게 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해당 수역을 관할하는 해상보안청 제3관구 해상보안본부가 충돌 직전 함선과 선박의 위치 및 상황 등 주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19일 전했다.
문제는 이지스함의 항로는 군사 기밀이어서 수사가 제약된다는 점이다.
일본 측은 주일 미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국이 1차 재판권을 가지는 만큼, 미국 측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요한 군사 정보일 뿐만 아니라 미군의 치부를 드러낼 수도 있는 일이어서 미군이 수사 협조를 기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조지프 오코인 미 7함대 사령관도 사고 원인 조사와 관련해 일본 측 조사에 구체적인 협력 여부에 대해서는 확언을 피했다”고 19일 전했다.  ·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마조리 무르타흐 쿡 전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은 "두 배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매우 많은 사실들이 있다"면서 "조사 결과를 내는데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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