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불 마켓 vs 베어 마켓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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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황소(Bull, 강세장)'가 '곰(Bear, 약세장)'을 이겼는지를 놓고 증권가에서 논쟁이 붙고 있다.

최근 종합주가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자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는 '불 마켓'이라는 분석과 약세장 속에서 주가가 잠깐 오르는 '베어 마켓 랠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맞서고 있다.

싸울 때 머리에 달린 뿔로 올려 치받는 황소는 강세장의 상징인 반면 앞발로 내리찍는 곰은 약세장을 뜻한다.

불 마켓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경기.기업 실적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대증권 박문광 투자전략팀장은 "실적을 포함해 증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개선되는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의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면서 국내 반도체.휴대전화 기업들의 수출이 늘고 주가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리츠증권 조익재 투자전략팀장은 "신학기 미국에서 PC 등 정보기술(IT) 관련 제품에 대한 소비가 살아나면서 아시아 증시의 IT 관련주들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IT 제품이 과잉 공급되면서 간헐적으로 제품 수요가 늘 때만 주가가 오르는 베어 마켓 랠리가 반복됐지만, 최근 미국의 투자 지출이 증가하는 등 과잉 공급이 완화되고 있다는 신호들이 포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메릴린치 이원기 전무는 ▶경기에 민감한 블루칩 주가가 사상 최고치에 접근하고 있고▶종합주가지수와 관련성이 높은 경기선행지수가 지난 6월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게 강세장의 신호라고 말했다. 李전무는 "연말까지 종합주가지수가 880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교보증권 박석현 책임연구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순매수를 강화하고 있고, 주식형펀드 잔고의 감소세가 진정되는 등 기관투자가들의 매도 공세도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현 장세를 베어 마켓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최근 호조로 나타난 경제지표들과 달리 19일 발표된 미국 미시간 대학의 8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하락했다. 미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용이 언제 회복할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주가 상승을 주도한 외국인들이 4개월간 7조원어치에 달하는 주식을 샀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개인 및 기관투자가들은 아직 매도에 치중하고 있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개인들은 경기 회복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증시에 돈을 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20일 현 장세에 대해 불 마켓은 아니며, 베어 마켓 중에서 좀 큰 장세인 '빅(Big) 베어 마켓 랠리'로 규정했다. 하반기에 주가가 많이 올라야 800선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증권사의 김승식 증권조사팀장은 "이라크 전쟁 이후 선진국을 중심으로 저금리.재정 확대 정책에 따라 단기적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장기적인 추세로 굳어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金팀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6개월간 주가가 올랐던 때와 비교하면 올해는 지난 4월 이후 5개월째 상승 국면을 이어가고 있지만 내수 경기가 침체됐다는 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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