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학살’과 일자리 만들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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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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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살’이라는 다소 기이한 제목의 논문이 있다.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이 쓴 이 논문은 1730년대 파리 생-세브랭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난 고양이 무더기 학살사건이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가 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프랑스혁명 전 열악한 처우 인쇄공 #주인 집 고양이 학살, 저항 확산시켜 #국가 안정에 일자리 중요성 일깨워 #일자리 창출, 문제의식만으로 안돼 #노사·야당과 몇 번이고 대토론회를

당시 파리는 농촌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실업자들로 넘쳐 났다. 일자리는 적은데 인력공급이 넘치다 보니 무급 견습공들의 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인쇄소 주인 부부가 키우는 고양이들보다 못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이 일상 다반사, 결국 끓어오르기 시작한 불만이 임계치를 넘으면서 대폭발하게 된다. 고양이조차 먹지 않는 부실한 음식과 비위생적인 환경에 참다 못한 인쇄소 견습공들이 음모를 꾸며 여주인이 애지중지하던 고양이를 포함해 주변의 고양들을 무더기로 죽여 버리는 엽기적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높은 실업률과 경제적 격차,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배경에 깔려 있는 이 사건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의 전조가 된다. 고양이보다 못한 신세인 견습공들은 고양이들로 상징되는 주인을 재판하고 자백을 받아 사형시키는 무언극(無言劇)을 만들어 내 법과 사회 질서 전체에 대한 분노를 공유했고 결국 집단적 저항으로 이어져 프랑스 대혁명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고양이 학살 사건은 ‘적정 수준의 일자리 만들기’가 국가시스템의 근본적인 안정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적 교훈이다.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며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누구를 위해서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으로 연결되는 이슈인 것이다. 다만 유혈혁명으로 연결된 당시의 프랑스 사회와 달리 요즘 청년 실업자나 비정규직들은 소심한(?) 복수를 한다. 직장이 없거나 미래가 불안하니 아예 결혼도 출산도 안 해 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가단위를 구성하는 인구의 기본 축이 무너지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가면 1900년대 초 조선 말기 인구로 환원된다는 예측이 나온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새 정부가 일자리 만들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안정적 고용을 통해 경제성장의 가닥을 잡겠다고 하는 것은 옳은 방향설정으로 보인다.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민간소비가 늘거나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거나 정부소비가 증가해야 한다. 그런데 한계상황에 온 가계부채와 고령화 때문에 민간소비는 위축되고 투자나 고용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일자리 없는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추경이나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서 정부 소비를 증가시키려고 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대통령이 최근 국회에 가서 일자리 추경편성을 강하게 요청하는 시정연설을 한 것도 일자리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정치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암만 진정성이 있다고 해도 문제의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어려움이다. 정부는 일자리 만들기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춘 구호성 이벤트가 아니라 정권을 초월한 상시적 노력의 대상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생산성 향상 및 경제성장과 연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부문 취업을 늘리는 문제의 경우 수요가 늘어나는 복지나 사회안전망 분야 등 구체적인 직종과 채용규모, 일정 등을 분명히 밝혀 취준생들이 막연하게 희망에 들뜨거나 가뜩이나 넘쳐 나는 ‘공시족’을 양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나친 기대는 결국 실망과 불만을 낳을 뿐이다. 청년층에 만연한 공공부분 일자리 선호를 더 부추겨 중소·중견기업 등에 가야할 인재들이 공공부문 취준생 대기인력으로 전락하는 부작용도 막아야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문제 역시 전환의 기준과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는 행운을 기대하고 무조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지원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는 로또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세등등한 정권출범 초기에는 몇몇 대기업이 정규직 전환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이는 또다른 ‘일자리 로또’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처음부터 정규직-비정규직간에 넘지 못할 현대판 신분격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을 민간에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채용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럴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계와 노동계의 합의를 구해야 한다. 이를 법안으로 구체화시키려면 야당의 협조도 받아야 한다. 토론의 과정에서 야당이 반대하고 재계와 노동계가 반발하겠지만 그 반대의 목소리를 국민들이 다 듣고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몇 번이고 열 필요가 있다.

차제에 노동관련법도 손을 봐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기득권을 가진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지 않으면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2년짜리 파견직을 전전해야 하는 ‘미생의 삶’ 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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