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인재(人災)…메이 총리ㆍ보수당 정부에 커지는 책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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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런던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든 후진국형 인재(人災)에,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보수당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의 24층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큰 불이 났다. 오전 1시쯤 저층부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화재는 50여 분 만에 상층부까지 번지며 건물 전체를 전소시켰다. [AF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의 24층 임대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큰 불이 났다. 오전 1시쯤 저층부에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 화재는 50여 분 만에 상층부까지 번지며 건물 전체를 전소시켰다. [AFP=연합뉴스]

우선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날을 세웠다.

메이ㆍ보수당에 날 세운 코빈 노동당 대표 #“고층건물 스프링클러 설치 보수당 정부가 묵살” #“화재 12시간 지나서야 늑장 입장 발표”

코빈 대표는 15일(현지시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악몽이 벌어졌다”며 “런던 그렌펜 타워 화재를 놓고 제기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메이 총리와 장관들이 직접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빈 대표는 2009년 6명이 숨진 런던 남부의 고층 아파트 화재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14층 건물 라카날 하우스 역시 화재가 난 지 4분 만에 불길이 위층으로 빠르게 번져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코빈 대표는 “당시 라커날하우스 화재는 이번과 판박이”라며 “그때도 고층 건물 화재의 위험성 문제가 제기됐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정부가 긴축재정을 이유로 지자체에 재원을  주지 않아 그렌펜 타워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못한 거라면, 이번 참사에 대한 대가는 정부가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런던 남부에서 발생한 라커날하우스의 화재 모습. 이번 화재와 판박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러지 캡처]

2009년 런던 남부에서 발생한 라커날하우스의 화재 모습. 이번 화재와 판박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러지 캡처]

코빈 대표는 “2009년 화재 이후 숱한 대책 보고서가 당시 보수당 소속의 주택부 장관 책상에 놓였다”며 “하지만 구체적 대책은 실행되지 않았고 보고서 위엔 먼지만 쌓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정치권에선 당시 고층건물에 대한 소방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컸지만, 주택 개발이 위축될 수 있어 주택부가 이를 미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번 화재 관련, 메이 총리의 늑장 대응에 대한 비난도 일고 있다.
메이 총리는 불이 나고 12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14일 오전 1시쯤 화재가 발생했고 언론이 실시간 중계를 하며 긴박한 상황을 전했지만, 메이 총리는 이날 오후에야 총리실 대변인을 통해 “사고 수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내각 회의는 오후 4시에 열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총리실 대변인은 이같은 비난 여론을 의식한듯 “메이 총리는 이번 참사에 애통해하고 있으며 상황을 시시각각 챙기고 있다”며 “화재를 수습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근 잇단 테러에 대형 화재 참사까지 벌어지며 정부 구성도 못하고 있는 메이 총리는 그야말로 사면초가 신세다. 정부 구성이 급한 만큼  민주연합당(DUP)과의 협상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메이 총리는 화재 참사로 14일 하루 중단했던 DUP와의 정부 구성 협상을 15일 재개했다. 스카이뉴스 등에 따르면 메이 총리와 제임스 브로큰셔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은 이날 다우닝가 총리관저에서 DUP 외에 북아일랜드의 다른 정당 대표와도 만나 정부 구성 협조를 당부할 계획이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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