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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정착 돼야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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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미 예상못한바도 아니지만 선거판이 이상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갈수록 선거 분위기가 흐려지고 누가봐도 정상으로 보기 어려운 항태들이 가는 데마다 속출하고 있다.
격렬하기 이를데 없는 상호 비방과 인신공격,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흑색선전과 부정선거 시비, 더 노골화해져 가기만하는 지역감정과 유세장의 폭력…, 불안하고 위험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선거전이 종반에 가까이 올수록 더 치열하고 더 뒤틀려가는 듯하다.
경우에 따라선 한 나라를 걸머지고 나갈 대통령을 뽑는 후보들의 경쟁이라기보다 이판 아니면 사판이란 식의 여유라고는 전혀없는 건곤일곽의 생명을 건 한판 승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설혹 그렇다고 해도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꼭 걸어야할, 그리고 어떤일이 있어도 꼭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이번 선거전을 계기로 이땅에 선거를 정착화하는 일이다. 지난 16년간 단절되었던 것처럼 선거단절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도대체 이런 식의 비도덕적 선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대관절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의 생각에 비롯돼서 선거 비효용론·선거 낭비론, 심지어는 선거위험론·선거망국론등의 선거 무용론들이 충분히 대두될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준거로 생각하는 선거, 우리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하겠다고 바라마지않는 서구선진국들의 선거와 우리선거는 수준이 다를 뿐이지, 보통 발전도상에 있는 나라들의 선거는 예외없이 우리만 못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워낙 성취동기가 높은 국민이어서 우리보다 못한 나라들의 그것은 아예 안중에 차지않아 현재 우리 선거가 하지하로 보이지만, 실은 인도나 남미등 선거 한번 치르면 2백∼3백명씩 죽는것이 항다반사가 되어 있는 나라들에 견주면 우리는 꽤 수준높은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라고 민주주의 역사가 남달리 긴것도 아닐 바에야 겨우 돌이나 던지고 달걀이나 날리고 기껏해야 각목이나 난무하는 정도는 양반선거중의 양반선거로 자부하는 것이 오히려 선거의 정착화를 위해 바람직한 사고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서구에서 원래 만들어질때 그대로 갈등구조다. 말이 좋아서 갈등이지 사실은 「싸움하는」구조가 민주주의 구조다. 그렇다면 그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은 서구가 행해온 그대로 선거를 통해 해결해 갈수밖에 없다.
오로지 선거를 통해 민의를 묻고,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고, 선거를 통해 타협을 강구하고, 선거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리고 선거를 통해 한을 푸는-그 선거의 정착화만이 앞으로 일어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갈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면서 가장 쉬운길이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오로지 그뿐인 유일의 길이다.
만일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선거를 위험스럽게 보는 시각과 생각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나게 된다면, 혹은 선거는 어쨌든 필요 불가결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들이 만의 하나라도 증대하게 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귀항할지도 모르는, 오로지 기약없이 표류하기만 하는 난파선과도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더 이를 여지도 없이 선거에 참여한 우리들 유권자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 생각의 옅음과 얕음, 우리 행동의 경망됨과 부실함, 기다릴줄 모르고 조금하고, 내 생각과 다르면. 혹은 내 하고자 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불공대천지수처럼 날뛰는, 그 좁고 격하고 단번에 다 얻어내려는 우리 자신에게 그 중대결과의 화살을 꽂아야한다.
승부사들처럼 생사를 걸고 싸우는 후보들에게 묻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나온다면, 우리는 다음 선거에도 어김없이 그같은 승부사들을 주자로 놓고 뽑는 싸움을 또다시 반복하게될 것이라는 것을 깊이 주지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이당에 승복하는 버릇을 정착시키는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선거전을 치러왔지만 한번도 깨끗이 승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야 묻지 않아도 누구나 다 불을 보듯이 명백히 안다. 그러나 그렇게만든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다. 돈을 받아먹든, 권력에 짓눌렸든 표를 던지는 주체가 우리라면 잘못은 돈에도 권력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게 있다.
돈과 권력이 아무리 난무해도 그것이 인격적 주체가 될수 없는 이상 그것이 손수가서 투표하지는 못한다. 투표는 오직 우리가 우리 손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내가 바라는 바대로 나오지 않을때엔 으례 『너』때문이야 라고, 책임을 돈에 돌리고, 권력에 미루고, 그리고 승복하지 않는 것이 우리 버릇처럼 돼 왔다.
이번 선거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깨끗이 승복하는 선거가 되게 해야한다. 내가 당선되지 않는 선거는 『무효다』하는 소리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제발 끝을 내야한다. 내가 이기면 승복하고 내가지면 흔들어 놓겠다는 선거는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는 선거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소삭의 대통령」이 나오는 선거로 예측되는 선거다. 그럴수록 더 승복하는 기풍-그야말로 사내다운 깨끗한 기품을 이번 선거를 통해 확립해야 한다.
우리 모두 누가 이기든 깨끗이 손을 들어 축복해주는 후보만 적어도 다음 선거의 대권을 약속받을 수 있는 인격의 인간으로 존중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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