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 원가 떨어져도, 슬슬 오르는 생활물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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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양파를 고르고 있다. 가뭄으로 최근 양파 도매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이상 급등했다. 또 식음료 제품의 가격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뉴시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양파를 고르고 있다. 가뭄으로 최근 양파 도매 가격은 1년 전보다 50% 이상 급등했다. 또 식음료 제품의 가격도 잇따라 오르고 있다. [뉴시스]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가뭄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재확산되면서 농축산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라면·치킨·음료·맥주 등 식음료 제품까지 인상 러시가 이어지면서 서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라면값 5.5%, 음료값 7.5% #서민 먹거리 위주로 치솟아 #업체 “누적된 경영비용 반영” #경기 회복세 등과 맞물려 #한동안 상승세 지속 전망 #정부, 선제적 물가 관리 필요

12일 업계에 따르면 대표적 간식거리인 치킨은 BBQ가 지난달 10% 가격을 올린 데 이어 교촌치킨도 이달 말부터 6~7% 가격을 올린다. 앞서 지난달 롯데칠성음료는 대선을 하루 앞두고 칠성사이다·펩시콜라·레쓰비(캔커피) 등 7개 제품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이에 앞서 경쟁 업체인 코카콜라는 지난해 11월 5% 가격을 올렸다.

1위가 올리면 경쟁 업체가 따라가는 식의 패턴이다. 라면업계의 경우 지난해 12월 농심이 신라면·너구리 등 12개 제품의 가격을 5.5% 올린 데 이어 지난달에는 삼양이 삼양라면·불닭볶음면·짜짜로니 등 주요 라면 제품의 가격을 역시 같은 폭(평균 5.5%)으로 올렸다. 오비맥주(지난해 11월)의 인상은 어김없이 하이트진로(지난해 12월)의 인상으로 이어졌다.

인상 러시는 공교롭게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본격화된 지난해 10월 말 이후 최근까지 집중됐다. 지난해 5월 0.8%에 불과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을 기점으로 1.3%로 뛰더니 5월 현재 2%로 다시 올랐다. 이를 두고 국정 공백 상태를 틈탄 업체들의 꼼수 인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12일 한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CEO스코어)도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월까지 제품 가격을 올린 주요 식품업체 10곳 중 8곳은 지난해 말 기준 매출원가율이 전년에 비해 도리어 떨어졌다. 매출원가율은 총 매출 가운데 제품의 매입 원가 혹은 제조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원재료비·인건비·설비투자비·감가상각비 등이 매출 원가에 속한다. 매출 원가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기업의 부담이 줄어 가격 상승 요인이 적다는 뜻이다.

실제 라면값을 올린 농심을 보면 지난해 말 매출원가율은 67.8%로 1년 사이 1.4%포인트 줄었다. 삼양식품(-1%포인트), 오비맥주(-1.4%포인트), 하이트진로(-0.6%포인트), 코카콜라음료(-1.4%포인트), 롯데칠성음료(-1%포인트) 등도 모두 매출원가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잇따른 치킨값 인상으로 논란이 된 BBQ도 매출원가율이 63.3%에서 62.8%로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분석이 너무 단편적이라고 주장한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값 상승을 유일한 가격 인상 요인으로 보는 것은 편협하다”며 “물류비를 포함한 매관리비(판관비) 등 매출 원가에 들어있지 않은 경영비용 상승이 누적돼 수년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한 걸 두고 1년 전 수치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수출 증가 등 경기 회복세와 맞물려 물가 상승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에서 열린 창립 67주년 기념사에서 “앞으로 경기 회복세가 지속하는 등 경제 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는 통화정책 완화 정도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이런 가능성 검토를 면밀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를 올릴 때는 경기가 좋아지리란 기대가 있고,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자본비용이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경기 호전 여부와 상관없이 정부가 물가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는 ‘톱니 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톱니 효과란 소비가 늘면 관성에 의해 원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운 현상을 가리키는데, 소비자물가 상승세에도 적용된다. 기업들이 원가 절감에도 불구하고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번 올라간 물가는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물가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환율·금리 관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회복세에 대한 낙관이 자칫 물가 관리를 소홀하게 하고 서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오르는 것은 대부분이 소비를 줄일 수 없는 생활형 물가”라며 “지난해 소득 1분위(최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되레 줄어든 상황에서 물가 상승은 서민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1분위 근로소득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8% 줄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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