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 교수 "KBS·MBC 처참하게 망가져 실망 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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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준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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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10일 "편파보도를 일삼아 공영방송의 정신을 유린한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 그 자체가 어떻게 '언론 장악'과 같은 말이 될 수 있냐"고 말했다. 이는 전날인 9일 자유한국당이 "고대영 KBS 사장과 김장겸 MBC 사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공영방송 장악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고 논평을 낸 것과 관련한 의견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10일 오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와 MBC가 처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인 데 대한 실망이 감당 못 할 정도로 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도대체 내가 왜 그런 방송을 보려고 시청료를 내야 하나'라고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이명박근혜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언론과 권력 기관을 사유화해 민주질서의 근본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명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완전한 권력의 주구로 타락시킨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명박(MB) 정권이 언론 장악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권 초기 광우병 사태로 톡톡히 혼이 난 MB는 방송 장악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 같다"면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잘라내거나 한직으로 좌천하는 일이 본격적으로 그때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두 방송국 내 제자들에게 전해 들은 그들의 무자비한 횡포는 전율을 금치 못할 정도였고 MB 아바타들은 우리 언론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했다.

그는 "KBS와 MBC가 정권의 주구(走狗)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4대강 사업 관련 보도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며 MB 정권의 언론 장악이 4대강 사업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분석했다. 그러면서 "두 방송 뉴스는 언제나 4대강 사업의 허황된 청사진으로 점철된 용비어천가만 볼 수 있었다"며 "만약 KBS와 MBC가 공영방송 본연의 비판기능만 제대로 발휘했어도 4대강 비극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또 "새 정부가 드디어 KBS와 MBC에 손을 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이 9일 KBS·MBC 사장 사퇴를 공개 요구한 것을 언급했다. 그런데 문제는 임기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 이에 이 교수는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맞으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언론개혁이 불가능한 일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알량한 원칙으로 그들의 임기를 보장해주는 게 맞는것지 죄를 물어 솎아내는 게 맞는 지 잘 모르겠지만 희망의 불빛이 보인다는 점에서는 기분이 좋다"며 "멀지 않은 장래에 KBS와 MBC의 뉴스를 다시 볼 때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 교수가 10일 오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작성한 이 글은 12일 오후 기준 조회 수 4만1000건을 넘어섰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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