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원인 밝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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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KAL기 실종사건은 시간이 지나고 사태가 진전되면 될수록 한층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여객기에 탑승했다가 도중에 내린 일본여권 소지 남녀가 신문도중 독극물을 음독, 그중 1명이 숨짐으로써 이 사건은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음독후 중태에 빠진 20대 여인의 국적과 신원이 밝혀지고 자기들의 소행임을 순순히 자백하면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 있다.
물론 음독동기나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나오지 않은 현단계에서 이들의 수상한 행적이나 정황만으로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속단한다는 것은 이른감이 없지 않다.
기체가 발견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폭탄에 의한 공중폭파인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다 이들의 복잡한 정체를 밝혀내자면 상당기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객관적 정황으로 보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뿐이지 범인일 가능성은 충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혐의점을 두고 의심을 하면 한정이 없지만 이들이 빈과 공산권인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KAL기에 탑승했다는점, 여권위조과정에 의문의 인물인 재일동포 이름이 등장하고 있고 간첩이나 공작원으로 특수훈련을 받지 않으면 쉽게 기도할수 없는 독극물을 음독했다는점 등을 들수 있다.
이들은 바레인 당국에 체포되어 수사를 받던중 담배를 피우는체 하며 담뱃갑에서 글라스 캡슐을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런 독극물은 보통 사람이면 가질 필요도 없거니와 끔찍한 범행과 관련이 없다면 목숨을 내던질 수도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또 하나, 다른 국적비행기를 다 제쳐놓고 유독 우리나라사람이 많이 탑승하는 KAL기를 노렸다는 점도 심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내년 올림픽개최에 앞서 올림픽참가신청 마감이 임박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기를 틈탄 사회혼란, 민심 교란을 겨냥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올림픽 참가신청을 앞두고 한국행이 극히 위험하고 모험이라는 인식을 세계에 널리 알려 이를 저지하려는 획책가능성도 다분히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북괴의 소행이 아닌가 보여진다. 섣부른 단정은 굼물이라해도 랭군사건등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속성으로 보아 십분 짐작할수 있다.
열쇠는 살아 남은 20대여인이 쥐고 있다. 이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는 일이 급선무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수사진의 활약과 바레인 당국의 수사협조가 선결되어야 한다. 국제예양과 몬트리올 협약에 따라 정치범 아닌 잔혹한 테러범은 피해당사국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 설혹 이 여인이 KAL기 사건과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들의 정체는 밝혀져야 한다.
지난번 일본경찰에 잡힌 적군파 2인자도 한국행을 기도했듯이 지금 우리나라는 국제테러분자들의 표적이 된듯한 느낌이다. 따라서 이들의 범행기도를 원천봉쇄하는 국제수사공조체제 강화 및 정보망의 구축은 물론, 완벽한 보안 대책등을 서둘러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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