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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라인' 솎아내기... 검찰 '살라미 전술로 조직 무력화됐다"

중앙일보

입력

법무부가 8일 검찰 고위직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단행했다. 고검장 및 검사장급 7명과 고검검사급 3명에 대한 인사이동이었다.

법무부, 8일 검찰 고위직 인사 전격 단행 #윤갑근ㆍ정점식ㆍ김진모 등 사실상 무보직 #지검장 등 기관장 공석으로 두는 파격 인사

법무부는 이날 오전 9시 36분 사전 공지 없이 이례적으로 전격적으로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사건에 대한 부적정 처리 등의 문제가 제기됐던 검사들을 일선 검사장, 대검 부서장 등 수사 지휘 보직에서 연구 또는 비지휘 보직으로 전보했다”며 ‘문책성’ 인사임을 분명히했 다. 고등검사장 및 검사장급 검찰 고위직으로, 인사이동은 오는 12일 자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옮기는 윤갑근 대구고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옮기는 윤갑근 대구고검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인사로 지난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위 의혹 수사를 맡았던 윤갑근(53ㆍ사법연수원 19기) 대구고검장이 비(非) 수사지휘 부서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검사장급인 정점식(52ㆍ20기) 대검찰청 공안부장, 김진모(51ㆍ20기) 서울남부지검장, 전현준(52ㆍ20기) 대구지검장 등 3명도 윤 고검장과 함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다. 관행적으로 검사장 승진을 앞둔 검사들이 가는 자리여서 무보직(無補職)이나 다름없다.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 [중앙포토]

정점식 대검찰청 공안부장 [중앙포토]

검찰 고위 관계자는 “고검장ㆍ검사장 4명에 대해 사실상 무보직 발령을 낸 것”이라며 “검찰 내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사를 계속 쪼개서 하는 ‘살라미 전술’(하나의 과제를 여러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전술)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는 대대적인 인사 조치로 검찰의 집단 반발을 산 반면 문재인 정부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문책ㆍ경질성 인사를 하고 있어 검찰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우 전 수석은 특검을 포함해 이날 세번째로 소환됐다. 강정현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우 전 수석은 특검을 포함해 이날 세번째로 소환됐다. 강정현 기자

이번 인사를 두고 검찰 내부에선 ‘우병우 라인 솎아내기’라는 평가가 많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박영선(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검찰내 ‘우병우 사단’이라며 공개했던 명단이 오늘 그대로 인사조치됐다”며 “소폭 문책성 인사이기 때문에 검사들이 뭐라고 반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검찰 내부에선 “전격적인 인사다”“세월이 무섭다”는 반응이 나왔을 뿐 집단 반발 조짐은 없었다.

윤 고검장은 지난해 8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수사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수사를 접었다. 오히려 우 전 수석이 수사를 받고 있던 중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황제 수사’라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정 공안부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사건’의 청구인 측인 법무부 태스크포스(TF) 팀장을 맡았다. 이어 대검 공안부장을 맡아 민중총궐기대회 등 집회에 강경 대응하고, 당시 야당 의원에 대한 선거법 위반 과잉 적용 등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김 지검장은 이명박 정부때 청와대 민정2비서관으로 근무하며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검찰 조사를 받았다. 우 전 수석과는 1990년 사법연수원을 19기로 함께 수료한 연수원 동기다.
전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 재직 때인 지난 2009년 MBC 피디수첩 제작진을 기소해  당시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정치 검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윤회 문건’ 수사팀도 ‘문책성’ 인사 조치됐다. 유상범(51ㆍ21기) 창원지검장은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옮기게 됐다. 유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이른바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한 실무 책임자다.  유 지검장을 도와 수사 당시 ‘문건 진위 여부’ 실무(당시 형사1부장)를 담당했던 정수봉(51ㆍ25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도 한직인 서울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양부남(56ㆍ22기) 광주고검 차장검사는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전보됐다. 박균택 전임 형사부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함에 따라 공석이 된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다.

‘돈봉투 만찬’ 참석자로 경고조치를 받은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대구지검장으로 옮겼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서울중앙지검장이 고등검사장급에서 검사장급으로 하향 조정된 상태에서 검사장급 간부 2명(윤석열 지검장, 노 1차장검사)이 동시에 근무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로 김진숙ㆍ박윤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서울고검 검사로 옮기게 됐다. 법무부는 “비지휘 부서 정원 확보 차원에서 일부 고검검사급 검사에 대한 전보 인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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