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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건강] 노년 우울증, 세월 따라 슬금슬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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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노년기 우울증을 고치면 만병을 치료한 것과 다름없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울적한 일이 많이 생긴다. 우선 일터에서 멀어져 경제적으로 쪼들린다. 여기저기 아픈 증상도 흔하다. 배우자, 친한 벗 등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고독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노년기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다. 하지만 노인 우울증을 치료받는 이는 극히 드물다. 미국에서조차 우울증 노인은 15%나 되지만 치료받는 노인은 열 명 중 한 명꼴에 불과하다. 노인 우울증,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며,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노인 우울증의 특징=노인 우울증은 흔히 질병과 배우자 사망 등으로 촉발된다. 뇌졸중.당뇨병.심장병.암.만성폐질환.관절염.파킨슨병.치매 등 만성 질환은 노인 우울증의 가장 흔한 촉매제다. 병든 몸이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셈이다.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메디컬센터 브렌트 리지(노인학) 박사는 "질병이 노년기 우울증의 신호인 경우도 적지 않다"며 "만성병을 앓는 노인은 정신건강부터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실제 노인 우울증 환자는 우울감 자체보다 여기저기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등 신체의 불편한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

노년기에 우울증을 앓게 되면 기억력.집중력이 치매로 생각될 정도로 심각하게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치매를 의심해 병원을 찾은 뒤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노인 우울증은 피해망상도 잘 동반된다. 이를테면 "누군가 날 싫어한다" "내가 먹는 밥에 몰래 나쁜 음식을 넣어 나를 해치려 한다" 고 호소한다.

노인 우울증은 젊은 사람보다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리지 박사는 "미국에서 65세 노인 사망자의 19%는 자살이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자살률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 3~4배 많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조맹제 교수는 "65세 이상 노년기에 접어든 부모나 친지가 최근 들어 말수가 적어지고, 식사를 하지 않으면서 주변정리를 하는 등의 변화를 보일 땐 늘 자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고 들려 준다.

자가 검진으로 조기 발견을=노인이 만성병을 앓을 때, 배우자나 죽마고우를 상실한 경우,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는 경우 등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땐 우울증 자가검진을 해보는 게 좋다.

조 교수는 "노인 우울증 역시 조기발견과 치료로 완치가 가능하다"며 "대화를 기피하고, 체중이나 식사량이 줄면서 불면증 호소, 가족.친지 등을 의심하고 비난할 땐 우울증을 의심해 보라"고 강조한다.

통상 우울증 환자는 이전보다 매사에 무표정해지고 늘 기분이 언짢은 듯 보인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선 절망적인 단어만 꺼낸다. 질병 초기엔 최소한의 일상생활은 하지만 병이 깊어지면 먹고 일어나는 일조차 힘들고 귀찮아 한다.

약물 치료가 우선=노인 우울증 역시 약물 치료가 해결책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에 비해 치료기간을 2배 이상 길게 잡아야 한다. 노인 우울증 환자는 신체 질병으로 인해 약물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분당 서울대병원 정신과 하교섭 교수는 "약물 치료가 힘든 노인 우울증 환자에게는 전기충격으로 좋은 치료효과를 볼 수도 있다"고 밝힌다. 이때는 단기라도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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