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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단 한 명의 친구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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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이영희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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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함께 점심을 먹던 20년지기 친구가 불쑥 물었다. “너는, 절친이 누구야?” 순간, 당황했다. 테스트인가. “어? 너…잖아.” “맞지? 다행이다.” 난데없이 중년의 우정을 확인하고는, 마주 보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이런 친구가. 최근 한국어판이 출간된 『나는 아직 친구가 없어요』(바다출판사)는 어느 날 자신에게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걸 깨달은 35세 만화가 나카가와 마나부의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다. 고향 홋카이도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던 20대, 지주막하 출혈로 사경을 헤맸다. 이를 계기로 ‘언제 죽을지 모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 마음먹고 도쿄로 상경했다.

그렇게 만화가 생활 2년차, 혼밥·혼술·혼노래방의 달인이 되었으나 속을 터놓을 친구 하나 만들지 못했다. 고향의 절친(이라 생각했던 동창)이 자신에게 연락 없이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는 결심한다. “이대로라면 고독사 예약이다. 친구를 사귀어야만 한다.”

서른다섯 살 남자의 친구 만들기 도전은 웃기고 눈물겹다. 먼저 스스로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점을 보러 갔다가 “인복을 타고났다”는 속 뒤집는 점괘를 듣는다. SNS를 시작하고,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고, 동네 바를 기웃거리고, 교회까지 나가 보지만 친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를 맺긴 쉽지 않다. 그러던 중 같은 맨션에서 방 하나씩을 나눠 쓰는 하우스메이트 B씨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둘은 함께 살던 초기 생활소음 문제로 다툰 후 어색해진 사이. 관계를 회복하려 말을 걸고 밥도 사며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나 싶었는데, B씨가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한다. 다급해진 저자는 묻는다. “갑자기 물어봐서 미안한데, 너한테 나 친구 맞아?”

한심해 보일지 모르나 누군가는 심각하다. 사회생활을 하며 아는 사람은 늘어가고, SNS 친구는 수백 명에 달하지만 그중 ‘내 친구’라 부를 만한 이는 몇 명이나 될까. 죽을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고 정신과 전문의들은 말한다. 지난달 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만 35세 이상 69세 이하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은 형제·자매(56.1%)보다 친구·이웃(62.5%)이었다.

이쯤 되면 어른에게 친구는 생존의 문제다. 그러니 지금 외롭다면 저자처럼 노력해볼 일이다. 관계가 영 애매할 땐 과감히 물어보자. “우리 친구 맞지?” 인생의 많은 일이 그렇듯 친구 만들기에서도 “지금보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싸움에서 도망칠 수만은 없다.”

이영희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