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노인수발보험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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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대상으로 전국의 6개 도시에서 제1차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제도의 명칭을 노인요양보장 제도에서 노인수발보험 제도로 바꿨다. 즉 비용이 많이 드는 요양(의료) 대신 수발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국가가 보장하기보다는 전 국민이 보험에 가입하는 방식을 담은 법안이 최근 국회에 제출되었다. 2008년 7월 본격 시행키로 돼 있다.

수발보험은 가족이 전적으로 맡고 있는 치매나 중풍 환자의 부양 책임을 사회가 나눠갖는 제도다. 병원비는 건강보험이, 중풍 환자 목욕.대소변 처리 등의 뒤치다꺼리는 수발보험이 맡게 된다. 제2의 건강보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처음 시행하는 것이어서 수발보험의 미래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많을 것이다. 국민이 건강보험료와 별도로 이의 10%에 해당하는 수발보험료를 부담케 되면 수발 서비스의 질과 양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병원 가면 치료비의 일부를 환자가 내듯 수발 비용의 20%를 치매 노인 등이 부담해야 한다. 이 비율이 선진국의 10%보다 높기 때문에 그 불만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또 부모가 없거나 다른 이유로 당장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젊은이의 수발보험료 저항은 조직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장애가 통제 가능한 범위 이내로 줄어들 때까지 정부는 1, 2, 3차의 시범사업을 계속해 문제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제도의 발전을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보험 적용 대상자 판정등급 기준을 너무 까다롭게 설계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입법 추진 중인 안대로 하면 간신히 문지방만 넘을 수 있는 노인은 자립생활자로 분류돼 보험 적용을 못 받게 된다. 2008년 7월에는 온종일 드러누워 지내는 최중증 환자 8만5000명만 서비스를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정기준은 이 제도가 노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원래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2010년에 대상자를 확대한다 해도 16만6000명(대상자의 약 20%)의 중증 노인만 혜택을 보게 된다. 전 국민이 보험료를 내는데도 절대 다수인 80% 노인들이 수발 서비스를 못 받게 되는데 이들의 반발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수발 보험료를 좀 더 부담하자고 국민을 설득해 많은 노인 혜택을 보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수발보험이 중풍과 치매 환자의 수발 서비스만 맡고, 이들 환자의 의료비는 건강보험이 담당토록 나누면 요양시설에 있던 환자가 병원으로 가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자식도 거들떠보지 않는 노인은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대판 고려장'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치료비도 수발보험이 담당하면 요양시설에서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하면 치료비가 싸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끝으로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적응력의 감퇴이기 때문에 수발보험이 노인을 수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지고 건강이 증진될 수 있도록 급여체계를 개선해야한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노인 질병 예방 서비스를 적극 활용, 지역밀착형 노인 수발 보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보완이 이뤄져야 일부에서 우려하는 노인수발보험의 시기상조론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옥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