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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입 근절” 여야 한목소리 … 수사권 검·경 이관엔 이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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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3면

인사청문회 앞두고 주목받는 국정원 개혁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정보위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국정원은 새 정부 출범을 맞아 대대적인 개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중앙포토]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정보위원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국정원은 새 정부 출범을 맞아 대대적인 개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중앙포토]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문재인 정부의 권력기관 개혁이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 인사 폭풍으로 시작된 권력기관 개혁은 경찰을 지나 국정원으로 향하고 있다. 29~30일 열릴 예정인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주목을 모으는 이유다. 청문회를 통해 국정원 개혁의 기본적인 방향도 자연스레 드러날 전망이다. 특히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인사청문회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30일 청문회 계기 개혁안 분출 #서훈 후보자 “국회와 협력해 법 개정” #검찰 개혁 이어 권력기관 개편 수순 #국정원장 해임건의안 도입도 거론

국정원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 국내 정보 수집 업무와 수사 기능은 폐지해 한국형 CIA(미국 중앙정보국)로 개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좌담회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연설 제목은 ‘권력기관 대개혁으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였다.

국정원 주변 식당 한산 … 하마평도 안 돌아

서 후보자 지명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국정원을 개편하기 위한 포석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서 후보자는 과거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주도한 대북 전문가로 정치 개입 등으로 논란이 된 국내 파트에선 중책을 맡은 적이 없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땐 대북전략조정단장을 맡아 실무를 처리했고 2007년에는 국정원 3차장으로 일하며 정상회담문 작성을 주도했다.

국정원 내부에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나본 인물로 통한다. 남북 정상회담 이전인 1997년부터 2년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한국 대표로 북한 금호지구에 상주하면서 대북 업무를 맡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정부 9년간 국정원의 대북 업무가 와해된 상황에서 대북 업무에 정통한 서 후보자는 이를 복원하기 위한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서 후보자가 국정원장에 취임하면 대북 정보 강화와 함께 국정원 개혁 작업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서 후보자는 27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국정원법 개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국회의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며 “국회와 협력해 관련법을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여기엔 국회 협조 없이 국정원 개혁이 힘들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앞서 지난 10일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된 직후에도 “국정원의 정치 개입 근절은 어제오늘의 숙제가 아니다”며 “많은 정부에서 시도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국정원 내부는 숨고르기 중이다. 지난 26일 점심 무렵 들른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정원 인근 식당은 한산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즐겨 찾는다는 A 식당은 빈자리가 절반이 넘었다. A 식당 사장은 “지난해 김영란법으로 손님이 줄기 시작했는데 정권이 바뀐 이달부턴 손님이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인근 B 음식점 직원은 “양복 입은 손님들이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고 전했다.

국정원 내부에선 1~3차장과 기조실장 하마평조차 돌지 않는다고 한다. 국정원장 후보자가 지명된 순간부터 조직과 예산을 총괄하는 기조실장 후임자에 대한 뒷담화가 돌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이를 두고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선 국정원 개혁 폭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돈줄 죄기에서 조직 개편으로 이어질 듯

국정원 개혁 시나리오는 돈줄을 죄는 것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조직 개편은 그다음 수순이다. 청와대는 지난 25일 올해 남은 특수활동비 126억원 중 73억원은 집행하고 53억원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 등의 예산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에서도 특수활동비 50억원을 축소하겠다고 했다.

영수증 제출 의무가 없어 눈먼 돈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가 축소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이 바로 국정원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기관에 편성된 특수활동비 8870억원 중 국정원에 배정된 예산은 4860억원으로 절반이 넘는다. 이어 국방부(1783억원), 경찰청(1297억원), 법무부(285억원) 순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기관 전체의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으로 논의를 확대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법 개정을 통한 국내 정치 참여 근절은 어렵지 않게 진행될 전망이다. 야당도 큰 틀에서 동의하고 있어서다. 국회 정보위 자유한국당 간사인 이완영 의원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이런 기조에 별 이견이 없다. 국회 정보위 국민의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산업 스파이와 테러 차단을 위한 조직은 필요하지만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며 “국가를 위한 정보와 정권을 위한 정보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정보위 바른정당 간사인 주호영 의원도 “국내 파트를 축소하고 대북 및 해외정보력을 높이는 쪽으로 국정원을 개편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이런 기류는 국회 전반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각에선 국정원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 분리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철우(자유한국당) 정보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들과 만나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 정보기관을 어떻게 운영하는지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시절 얘기처럼 해외정보만 하고 (국내) 대공수사를 약화시키거나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 개혁 추진에 있어 수사권 이관이란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현행 국정원법 제3조는 내란과 외환죄에 대해 국정원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원 수사권 이관을 국정원 개혁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2013년 9월 국정원법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국정원 대공 수사권 전면 이관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정원의 수사권을 검찰과 경찰로 이관해야 사찰이나 간첩 조작, 종북몰이 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국정원 수사권 이관에는 반대 입장이다. 이완영 의원은 “국정원 대공 수사에 있어 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수사권 이관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태규 의원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휴민트 등 장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테러와 대공 분야에 대한 수사권은 국정원이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개혁은 해묵은 과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야당에선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목소리가 국회에서 처음으로 힘을 받은 건 2000년대 중반으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당시 한나라당에서 시작됐다. 안기부 1차장 출신인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원 개혁 선봉에 선 건 역사의 아이러니 중 하나로 꼽힌다. 정 의원은 감사원의 국정원 예산 감사와 국정원 감찰을 맡는 정보감찰관, 국회 통제 강화 등을 들고 나왔지만 개정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3년에도 새누리당과 민주당 지도부는 국정원개혁특위를 국회에 설치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정원 과거사 진상 조사” 주문도

하지만 이번엔 판세가 다르다. 여야를 포함한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국정원 개혁에 적극적이다. 국정원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의 견제 수단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에 대한 국회 견제 수단으로는 국정원장 해임건의안이 거론된다. 이완영 의원은 “국정원장이 정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임기는 보장하되 정치적 사건에 개입할 경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해임건의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헌법은 국회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장관)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행정부의 독재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 국정원장은 국무위원에 해당되지 않아 해임건의안 대상이 아니다. 지난 26일 만난 국회 정보위원의 한 보좌관은 “국정원은 비공개로 열리는 정보위 회의에서도 비밀 유지를 이유로 조직도 한 장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는 국회 간섭도 받기 싫으니 자기들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도 “견제받기를 포기한 권력기관은 부패하기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국정원 조직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국회가 동시에 칼을 빼든 지금이 국정원 개혁의 적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직 국정원 간부는 “테러나 산업스파이 등 정보 분야에선 국내와 해외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만큼 대통령 공약처럼 국정원 국내 파트를 완전히 없애긴 불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청와대와 국회가 의견 일치를 본 수준에선 국내 정치 개입 등 국정원에 쌓여 있는 적폐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국정원 전직 간부는 “국정원 수사국 간첩단 등 대공 수사 인력을 검찰이나 경찰로 이관하는 식으로 수사권을 이관하는 것도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논의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진상 조사가 이뤄져야 개혁이 완성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국내 파트를 없애고 해외안보정보국으로 바꾸는 개혁을 하겠다고 하지만 국정원 개혁을 단순히 국내 파트를 없애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국정원이 국내 공작정치의 하수인으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밝혀내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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