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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자, 부동산 광고] ② 철거 예정 주택에 투자하면 장기전세주택이 공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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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자격 제한 없는 장기전세주택 입주’. 서울에서 전세나 월세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혹할 만한 문구입니다. 장기전세주택은 무주택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으로 주변 임대료의 80% 선에서 최장 20년간 살 수 있는 주택이죠. 서울시는 이 장기전세주택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를 통해 2007년부터 시프트(SHift)라는 이름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전셋값 치솟자 장기전세주택 광고 기승 #1억~3억원에 철거 예정 주택 매입 유도 #개발사업 중단되면 투자금 묶이거나 손실

시프트는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영구임대주택과 달리 일반 분양 아파트에 섞여 있어 공공·영구임대주택에 비해 주택 품질이 좋고 거부감도 없습니다.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싼 데다 주변 임대료가 아무리 많이 올라도 보증금 인상 폭이 2년간 5% 이내로 제한돼 분양만 하면 수천 명씩 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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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많다 보니 시프트는 입주자격이 까다로운 편입니다. 세대원 모두가 무주택이어야 하고, 소득이나 차량 등 자산에 대한 기준도 충족해야 합니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입주할 수 있는 집은 아닌 셈이죠.

그런데 이 집을 자격 제한 없이 누구나 입주할 수 있다면? 그것도 1억~3억원을 투자해 입주 가격을 얻을 수 있다면? 전세 난민들의 눈길을 확 잡아끌 만합니다. 요즘 이런 취지의 유인물(전단)이 서울 주택가를 중심으로 배포되는가 하면,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1억~3억원만 있으면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이 돼 서울 마곡·장지지구 등의 59㎡(이하 전용면적)형이나 84㎡형 시프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재건축 이주 수요 증가 등으로 전셋값이 치솟자 과거 성행하던 ‘철거민 특별공급’ 거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겁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 성동구에 지어 공급한 장기전세주택(큰 사진).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면 이 같은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는 유인물(작은 사진)이 서울 주택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앙포토]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 성동구에 지어 공급한 장기전세주택(큰 사진). 철거 예정 주택을 매입하면 이 같은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는 유인물(작은 사진)이 서울 주택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앙포토]

최근 철거민 특별공급 거래는 그런데 과거와는 조금 다릅니다. 과거엔 철거민의 장기전세주택 입주권(이른바 ‘철거민 딱지’)을 거래하는 형태였다면, 요즘은 중개업체들이 개발 예상지역이나 예정지 내 철거 예정 주택 매입을 유도하는 식입니다.

시가 도로·공원 등으로 개발하는 구역에 주택을 갖고 있으면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공급 대상자는 소득 등 특별한 제한 없이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철거민임대주택특별공급제도).

중개업체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있습니다. 한 업체 관계자는 “개발 사업지 내 철거 예정 주택은 합법적으로 거래가 가능하다”며 “40㎡ 이하 철거 예정 주택을 갖고 있으면 서울 주요 택지지구 내 59㎡형 아파트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특히 합법적이고 100%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수수료로 4000만~5000만원을 요구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선 문제는 이들이 중개한 주택이 실제로 개발 예정지에 있느냐는 겁니다. 서울시는 과거에도 이 같은 편법 거래가 성행하자 철거민 특별공급 대상 자격을 강화한 바 있는데요(2012년 8월), 시는 당시 장기전세주택 특별공급 규칙상 특별공급 대상 기준을 ‘사업시행인가 고시일’에서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로 개정했습니다.

때문에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 이후 철거 대상 주택을 매입했다면 특별공급 대상 자격이 안 돼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할 수 없습니다. 주민열람 공고일 이후 철거 대상 주택을 거래하는 것 자체도 불법입니다.

최초 주민열람 공고일 이전 거래는 가능한데요, 이런 경우 문제는 개발사업 시행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다. SH공사 관계자는 “사실상 개발된다더라는 식의 소문만 믿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주변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주택이 개발구역에 포함될지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현재 사업 예정지로 지정됐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사업이 무기한 사업이 연기된 곳이 적지 않습니다. 만약 개발이 될 것 같아 주택을 매입했는데 개발이 안 되거나, 해당 주택만 구역에서 쏙 빠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낡은 주택을 되팔기가 쉽지 않아 투자금이 상당 기간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발 소문이 돌면서 주택값이 많이 올랐을 테니 되판다면 투자금 손실도 예상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기적으로 사무실을 옮기는 중개업체들이 많아 책임을 묻거나 수수료 환불이 쉽지 않다”며 “확정되지 않은 개발 계획을 믿고 주택 거래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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