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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영제가 시내버스기사 채용비리 불렀나-대규모 비리 또 적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에서 대규모 시내버스 운전기사 채용 비리가 또 적발됐다. 버스 준공영제 시행으로 운전기사가 인기직종으로 떠오르자 브로커가 입사자 추천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노조 지부장이나 회사 관계자와 짜고 취업 희망자에게서 뒷돈을 받아 챙기는 이른바 ‘취업장사’를 한 것이다.

부산경찰청,버스기사 취업장사한 노조지부장등 110명 검거 #노조와 회사관계자 14명 등 23명이 87명에게서 10억원 상당 받아챙겨 #이 가운데 3명 구속,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

버스기사 비리때 사용된 허위재직 증명서.[사진 부산경찰청]

버스기사 비리때 사용된 허위재직 증명서.[사진 부산경찰청]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배임수재 등 혐의로 부산지역 12개 시내버스 업체의 임직원 5명과 노조 간부 9명, 채용을 알선하고 중간에서 돈을 챙긴 운전기사 겸 브로커 9명 등 23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이 가운데 버스회사 임원 하모(63)씨와 직원 정모(42)씨,노조 지부장 이모(59)씨 등 3명을 구속했다. 이들에게 취업청탁을 한 87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노조 간부 등 23명은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 사이 신모(49)씨 등 87명에게서 시내버스 운전기사 채용청탁과 함께 1인당 800만~1600만원씩 모두 10억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 임원 하씨는 10명에게서 4600만원, 회사직원 정씨는 12명에게서 4800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부산 33개 시내버스 회사 가운데 12개 회사에서 밝혀낸 취업장사 규모다. 취업 희망자들은 노조 지부장·브로커 등과 안면이 있는 경우 800만원, 경력이 부족한 경우 등에는 1600만원 등 많은 돈을 건넸다. 이들 청탁자 가운데 54명이 정식 기사로 채용돼 현재 근무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는 채용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피의자 가운데 브로커 이모(58)씨 등은 대형차량 운전경력이 부족한 취업 희망자에게서 돈을 받고 이삿짐센터나 덤프트럭 회사에서 근무한 것처럼 경력증명서를 위조해 2명을 취업시키기도 했다. 채용을 청탁한 신씨는 뒷돈 1300만원을 주고 8개월가량 기다렸지만 1500만원을 낸 다른 사람이 먼저 채용되자 브로커를 위협해 2600만원 받아내기도 했다.

부산 버스기사 채용비리때 사용된 허위 재직이력서.[사진 부산경찰청]

부산 버스기사 채용비리때 사용된 허위 재직이력서.[사진 부산경찰청]

수사결과 노조 지부장 등은 불법 취업한 조합원에게 “수사기관에 자백하면 사측에 통보해 해고시키겠다”며 협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입사자 추천과 징계요구권, 배차관리 권한, 장학금 지급 대상자 추천 같은 우월적 지위를 가진 노조 지부장 등이 채용 후보를 추천하면 회사가 받아들이는 관행 때문에 이런 비리가 만연해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부산의 다른 시내버스 업체에서도 이 같은 취업장사가 광범위하게 있었을 것으로 보고 나머지 21개 업체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부산경찰청 광수대는 지난해 12월 13일 배임수재 혐의 등으로 김모(57)씨 등 시내버스 업체 4곳의 전·현직 노조 지부장 4명을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노조 간부와 결탁해 채용비리를 저지른 버스업체 2곳의 임직원 2명과 직원 등 브로커 5명,노조 간부에게 돈을 건넨 구직자 39명을 불구속 입건한 바 있다. 전·현직 노조 간부 8명은 2010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버스기사로 취업을 원하는 39명에게서 뒷돈 3억9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부산에선 2007년부터 33개 업체를 대상으로 버스회사의 적자를 보전해주는 버스 준공영제가 시행되면서 처우가 개선된 운전기사가 인기직종으로 떠올랐다. 하루 8~9시간, 주 25일 근무 기준으로 4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자녀 장학금과 학비 지원 등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부산시와 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이 올들어 처음으로 버스기사를 공채한 결과 24명 선발에 313명이 지원해 경쟁률 13대 1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산시는 버스 준공영제를 위해 연간 6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앞서 부산시는 이 같은 버스기사 채용비리를 막기 위해 시내버스사업조합과 함께 지난 2월 시내버스 승무원(운전기사) 공채제도를  도입했다. 기사채용 때 채용계획서를 버스사업조합에서 받고 채용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1·2차 서류전형과 인성검사를 하고, 시민단체·교수·노무사 등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채용위원회에서 면접시험을, 다시 면접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버스조합에서 5일간 승무원 교육, 업체별 실기시험(수습)을 거쳐 버스기사를 뽑기로 한 것이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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