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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윤동주 시인 100주년 특집 1] 윤동주에게서 우리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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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양고지부

2017년, 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출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아픈 상처를 감싸주는 시를 썼기 때문이겠죠.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와 연세대 핀슨홀에 있는 ‘윤동주 기념관’을 방문해 시인 윤동주의 저항 정신을 살펴봤습니다.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는 끝이 났지만, 글을 통해 윤동주의 정신을 많은 독자가 알았으면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저항, 한글로 시를 쓰다.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윤동주 100년 생애 전시회’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일생이 자세한 글과 사진으로 설명돼 있죠. 그중 윤동주 시인의 육필로 쓰인 시들은 전시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시절 다른 시인에 비해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는 상당히 많이 전해지는 편입니다.

미술관 설명에 따르면 “윤동주 시를 사랑하고 아끼는 분들은 윤동주의 육필을 보고 두 가지 점에서 놀란다"고 설명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쓴 시가 거의 완전한 한글로 씌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필체마저 정감있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윤동주 시인의 글씨체는 흘려 썼다기보다는 또박또박한 정체에 훨씬 더 가까운 느낌이죠. 또박또박 쓴 글씨체임에도 어딘가 모르게 정감이 있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살던 1930~1940년대 당시의 다른 시인들은 일본어 또는 한문투성의 시를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한글만을 사용해 시를 썼습니다.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을 소극적으로 드러낸 대목이라고 할 수 있죠. 일제 강점기 시절 윤동주 시인은 적극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수많은 시를 통해 끝없이 성찰하고 참회했습니다.

지금 학생의 저항 정신은

한국 근대사에서 학생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시 학생들에게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의지가 있었죠.

윤동주 시인의 삶을 학생의 시각으로 보면, 그 당시와 현대의 학생 사이의 공통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가고 싶은 문과에 진학해 자신의 길을 걸은 점, 또 정말 가고 싶었던 학교에서 떨어져 절망을 맛본 점은 요즘의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또 시대의 아픔에 고민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것도 비슷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에 고통 받고 고민했다면, 지금 우리 학생들은 부패한 정치로 고민 중이죠.

배경이나 방법은 다르지만 그 정신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이 ‘참회록’, ‘서시’, ‘쉽게 쓰여진 시’ 등의 시를 쓰면서 저항했듯, 지금 우리 학생들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에서 학생들의 자유 발언을 통해 시대를 비판하고 있죠.

물론 지금의 학생들에게 부족한 점도 보입니다. 윤동주 시인이 가졌던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입니다. 우리 학생들은 개성 넘치는 꿈을 가지기는 커녕, 대학 진학과 취업만을 목표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런 학생들이 윤동주 시인처럼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글=김예지(경기 백양고 2), 사진=최지훈(경기 백양고 3) TONG청소년기자 백양고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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