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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무국적 상품, 국내 업체 협업하면 세계서 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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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일호 오콘 대표가 지난 5일 성남 판교에 있는 오콘 사옥에서 상장 계획을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일호 오콘 대표가 지난 5일 성남 판교에 있는 오콘사옥에서 상장 계획을 밝히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 애니메이션이 중국과 미국의 TV 편성표를 바꿀 날이 오고 있다.”

상장 나선 ‘뽀로로 아빠’ 김일호 대표 #중소 스튜디오 모아 플랫폼 구축 #패션·완구 등 수익사업 다양화해야 #제2, 제3의 뽀로로 나올 수 있어

국내 애니메이션 기업 최초로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 중인 ㈜오콘의 김일호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밝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술을 전공한 김 대표는 실제 뽀로로 캐릭터를 창작한 ‘뽀로로 아빠’로 유명하다.

김 대표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문제점부터 털어놨다. 그는 “20년 한국 애니메이션을 개척해 오면서 절실히 느낀 문제점은 국내에 대형 유통 체인이 없다는 것”이라며 “창작 역량이 뛰어난 중소 창작자들이 보부상처럼 각자 자기 제품을 해외에 팔러 다녀야 하는 현실에서는 제2, 제3의 뽀로로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본력이 있는 대형 유통업체가 글로벌 판매에 나서고 창작 스튜디오들은 세계인을 사로잡을 작품 제작에 몰입해야 애니메이션 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에서는 시가총액 10조원에 육박하는 애니메이션 업체가 생겨났는데 한국은 1000억짜리 업체도 나오지 않고 있다”며 “20년 업력의 오콘이 상장과 함께 중소 스튜디오들을 한데 엮어 글로벌에 진출시키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한국 중소 스튜디오들의 창작 역량이 세계 정상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직적 협업과 유통 파워가 뒷받침되면 ‘K 애니메이션’은 영화나 음악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영화 같은 콘텐트는 문화적 코드가 다르면 동일한 감성을 느끼기 어렵지만, 동심(童心)은 동서를 막론하고 유사해서 공략이 쉽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이를 “애니메이션은 무국적 상품이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중소 스튜디오들을 한데 엮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수익 구조를 ‘종횡 모델’로 설명했다. 종적으로는 오콘이 만든 뽀로로·디보와 곧 선보일 새 캐릭터들, 또 중소 스튜디오들이 창작하는 캐릭터들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횡적으로는 패션회사·완구회사·테마파크와 같은 유관 산업을 결합한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종횡 구조로 비즈니스가 엮이면 애니메이션 산업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며 “제작 단계부터 유관 업체들이 협업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글로벌 인기 상품으로 도약하도록 서로 도우면 중소 스튜디오들도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콘이 IP(지식재산권) 산업의 플랫폼 역할에 나서면 국내 업체간 시너지 효과도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김 대표는 “오콘의 플랫폼 안에서는 각 스튜디오들이 2~6세, 초등생 저학년처럼 타깃 층을 달리하고, 공주·왕자 같은 캐릭터를 나누고, 완구·교육처럼 분야를 달리해서 효율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히트 캐릭터 몇 개만 만들면 미국·중국 같은 세계 최대 시장의 TV편성표도 한국 기업이 좌우하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이 오콘 투자에 나선 과정도 공개했다. 오콘은 자금 수혈을 위해 외국계 사모펀드에 30% 가량의 지분을 내준 적이 있는데 이 사모펀드의 까다로운 투자 조건 때문에 경영 활동에 애로를 많이 겪었다. 이 얘기를 들은 김 의장은 즉석에서 “사모펀드를 역인수하라”며 거액을 빌려줬다. 오콘 측은 이 자금을 상환하는 과정에서 일부 금액을 투자금으로 전환하고 지분 10%를 김 의장에게 내줬다. 이달 중 공식 계약이 종료되면 김 의장은 오콘의 2대 주주가 된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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