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 탕감"…선거공약 부작용|농어촌서 빚 안갚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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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농어촌부채 탕감」 공약에 영농자금 상환기피현상이 일고있다.
「1노3김」 대권주자들의 각중 공약이 홍수를 이루고있는 가운데 야권후보들이 『4조원이 넘는 농어촌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공약하자 일부지역의 농민들이 농협에서 꾸어쓴 원금·이자를 갚지 않은 채 12·16 대통령선거결과를 기다리며 들뜬 분위기에 주춤거리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어협·축협등의 각증 대출자금 회수실적이 부진해 자금압박을 받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회수율이 예년의 절반수준에도 못 미쳐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
이에 따라 각 단위조합 등에서는 영농회장등 관계자회의를 긴급 소집, 자금회수 독려반을 편성하는가 하면 마을별 좌담회·부녀회등을 통해 농어촌부채탕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임을 홍보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농촌문제전문가들은 『농어민들이 빚을 많이 얻어 쓰고도 대통령선거가 있는 5년마다 갚지 않아도 된다는 공약으로 받아들여 자칫 빚얻어 쓰지 않고 성실하게 농사짓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되는 비뚤어진 풍조가 만연될까 우려된다』고 걱정하고 있다.
◇회수부진=전남지방의 경우 올 연말까지 2천1백억원을 회수하도록 돼있으나 20일 현재의 회수실적은 3백15억8천1백만원으로 15%에 불과한 실정(예년 같은 기간 회수율 20%).
충북 서청주 단위농협도 회수목표 7억5천3백만원에 실적 1억8천9백만원 (25.1%)으로 예년 같은기간(35.2%)에 비해 10.1%포인트나 떨어졌으며 특히 강원도의 중소도시 K시단협의 경우는 회수율이 지난해의 60%선에서 22.1%로 3분의1선에 머물러 상부에 실적보고도 못하고 있다.
◇탕감기대=농민 정모씨(51·춘천시우두동) 는 영농자금 2백만원과 일반대출자금 6백만원 및 원금8백만원과 이자·연체이자 2백만원등 모두 1천만원을 연말까지 상환토록 고지서를 받았으나 「탕감공약」을 믿고 『선거결과를 봐서 상환하겠다』고 했다.
농민 최모씨(28·경남진양군대계면)도 같은 의견을 말했으며 황모씨(50·전북완주군이서면)는 『이자와 원금 30%만을 상환해 연체이자를 물지 않도록 대환조치를 받은 다음 선거결과를 보겠다』고 말했다.
특히 영·호남지역 농민들 사이에서는 요즘 『기호○번을 찍으면 융자금의 이자를 안내도 되고 ×번을 찍으면 원금까지 안내도 된다』는 소문이 나돌고있다.
◇회수독려=강원도 K시단협의 경우 23일 상오 단위조합임원·영농회장등 관계자 30명을 긴급소집, 대책회의를 갖고 23일부터 대출농자금 회수독려반을 편성, 독려에 나서기로 했다.
또 부산 대저단협은 자금회수를 위해 동별좌담회·영농회·부녀회등을 통해 떠도는 소문이 모두 공약임을 홍보하고있다.
◇주학중씨 (KDI선임연구위원)=집권자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그것도 연차적으로 할 경우 농어촌부채를 탕감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경우 금융기관의 막대한 수지결손문제와 형평상의 문제등이 있다.
놀고 빚진 농가는 도움 받고 열심히 절약한 농가만 혜택을 못받는다든지, 도시지역 영세자영업자·저소득근로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생겨 새로운 불만이 나올수 밖에 없다.
도시지역 달동네 서민들은 그나마 농민처럼 농협을 통해 빚마저 얻어쓸수 없는 소외계층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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