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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우리·약속 등으로 통합 강조 … 일자리 화두로 정책 속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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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03면

키워드로 본 문 대통령의 정국 구상

2시간50분.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부터 총리 후보자 지명까지 걸린 시간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이낙연 전남지사를 총리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가정보원장을 지명하고 대통령비서실장과 경호실장도 임명했다. 취임 이틀째인 11일에는 청와대 조직의 핵심인 민정·인사·국민소통수석을 임명했다. 취임 선서 후 22시간 만으로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지난 정권과 비교하면 문 대통령의 행보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역대 정권에선 당선증 수령에서 총리 지명까지 대체로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초대 총리 지명까지 39일이 걸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33일간 초대 총리를 고민했다.

취임식 전 야 4당 대표부터 만나고 #호남 총리 지명으로 탕평 의지 밝혀 #안보부터 챙기며 보수 불안감 해소

인수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은 뭘까. 중앙SUNDAY는 문 대통령의 발언록을 데이터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해 정국 구상을 들여다봤다. 지난 9일 밤 광화문광장에서 진행된 당선인 축하 행사부터 12일까지 공개된 대통령의 발언록을 분석했다. 1만1182자 분량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키워드를 뽑아봤다.

① 통합과 탕평

국민(45회), 대통령(34회), 우리(28회)는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키워드였다. 선거를 거치며 나뉜 민심을 아우르려는 통합과 탕평의 단어다. 9일 광화문 행사에 참석해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섬기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취임식 전에 야 4당 대표단을 먼저 만난 것에서도 통합 의지가 읽힌다.

총리 인선 과정에서도 이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선거 기간 첫 총리를 대탕평·통합형·화합형 인사로 하겠다고 약속드린 바 있다”며 “이 총리 후보자 지명이 탕평 인사의 신호탄이 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통합정부 운영 구상도 가시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사에서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 대원칙으로 삼겠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강조했다.

② 정책 속도전

정규직(25회), 노동자(11회), 일자리(10회) 등의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 방안’을 하달했다. 총리 지명 뒤 30분 만이다. 공공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어 12일엔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찾아가는 대통령 콘셉트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만드는 방안이 쉬운 것은 아니다.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며 “상시·지속적 업무와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엔 업무지시 2호로 중·고교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했다. 이번 주로 예정된 제37주년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도 지시했다.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업무지시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국정교과서 폐지는 역사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민생 문제는 직접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겠다는 구상이다. 이 총리 후보자도 이런 기조에 맞춰 지난 11일에 이어 13일에도 목포신항을 찾아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③ 일하는 청와대

약속(9회), 개혁(8회), 소통(7회)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키워드다. 공약 완수와 일하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읽힌다. 50대 초반 비서실장 임명이 대표적이다. 소장파 법학자로 분류되는 조국 서울대 교수를 청와대 민정수석에 앉힌 것에도 검찰 개혁 코드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2개월여 동안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인사에 개입해 줄 세우는 관행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조 수석도 지난 11일 “검찰 개혁에 대한 문 대통령의 철학은 확고하다. 저도 그 소신과 철학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의 검찰은 아시다시피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영장 청구권까지 갖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해 왔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적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직제개편에 따라 정책실장이 신설된 것도 일하는 청와대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둔다는 건 국가 어젠다를 추진하는 데 있어 정책에 상당한 비중을 두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④ 안정감과 신뢰감

문 대통령은 취임 첫 주 동안 안정(7회)과 경험(5회)을 강조하는 데에도 신경을 썼다. 인수위 없이 곧바로 업무를 개시한 만큼 국민에게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보수층의 불안감 해소와 이를 통한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외교안보 분야에 전력투구하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한반도 주변 4개국 정상과의 전화 통화를 마치며 외교 무대 데뷔를 마쳤다. 지난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는 40분이나 할애했다. 4개국 정상 중 가장 오랜 시간이다. 문 대통령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우리 국민과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재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첫 통화에서는 위안부 합의를 의제로 끌어냈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양국이 성숙한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데 과거사 문제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일본 정상과의 첫 대화에서부터 ‘국민의 눈높이’를 유독 앞세운 것은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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