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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파트에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 따로 있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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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24면

1 서재에서 작업 중인 서동희씨.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 벽쪽 수납장은 시즈 브락만, 벽의 선반은 폴 카도비우스, 창 아래 테이블은 알바 알토의 작품이다.

1 서재에서 작업 중인 서동희씨. 동그란 테이블과 의자, 벽쪽 수납장은 시즈 브락만, 벽의 선반은 폴 카도비우스, 창 아래 테이블은 알바 알토의 작품이다.

카우니스 코티(kaunis koti). 핀란드어로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 북유럽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는 서동희(36)씨는 혼자 살고 있는 32평(105㎡) 아파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6년 전부터 핀란드와 네덜란드, 프랑스,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고른 테이블과 의자, 램프로 따뜻하고 편안하게 꾸민 공간. 그 안에서 밥을 먹고, 글을 쓰고, TV를 본다.

아파트를 쇼룸으로 꾸민 가구 컬렉터 서동희

1년 전부터 자신의 공간을 ‘아파트형 쇼룸’으로 오픈하면서 요즘 그의 집은 주말마다 손님들로 붐빈다. 북유럽식 인테리어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내가 사는 곳과 그닥 다르지 않은 아파트에 놓인 가구들을 보고, 만지고, 직접 사용해볼 수 있어서다.

젊은 수집가인 그는 “어렵게 모은 빈티지 가구들을 쌓아두고 혼자 보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사생활 공개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쇼룸을 열었다고 했다. 과연 얼마나 아름답기에. 두근거리는 맘으로 카우니스 코티를 찾았다.


2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식탁과 의자. 램프는 폴 헤닝센의 작품.

2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식탁과 의자. 램프는 폴 헤닝센의 작품.

3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의자와 티 트롤리. 조명은 알바 알토의 부인 아이너 알토가 디자인했다.

3 알바 알토의 파이미오 의자와 티 트롤리. 조명은 알바 알토의 부인 아이너 알토가 디자인했다.

4 한스 베그너의 페브릭 소파와 폴 키에르홀름의 PK22 의자, 시즈 브락만의 사이드보드(수납장)가 놓인 거실.

4 한스 베그너의 페브릭 소파와 폴 키에르홀름의 PK22 의자, 시즈 브락만의 사이드보드(수납장)가 놓인 거실.

운명처럼 만난 알바 알토의 가구들

그의 아파트는 서울 광진구에 있다. 지어진 지 18년 된 조금 낡은 아파트다. 현관에 들어서면 짧은 복도가 나오고 오른편엔 침실이, 왼쪽에는 거실이 있다. 복도 왼쪽 흰 벽에 덴마크 조명 디자이너 폴 헤닝센의 동그란 램프를 달아 갤러리 분위기를 냈다. “원래 같은 아파트 24평(79.2㎡)에 살았는데 가구가 많아져서 1년 전쯤 이사를 했어요. 가벽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집 전체에 하얀 벽지를 바르는 게 첫 작업이었죠.”

집의 첫 인상은 단아하다. 거실과 주방, 작은 방 2개를 서씨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적절히 믹스해 스타일링했다. 먼저 거실로 들어섰다.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너가 1950년대 디자인한 녹색 페브릭 소파와 폴 키에르홀름의 PK22 의자, 네달란드 디자이너 시즈 브락만의 목재 사이드보드(수납장)이 정갈하게 놓였다. 역사적인 디자이너들의 이름에 주눅 들어 엉거주춤하고 있는 기자에게 그가 말한다. “PK22 의자에 한 번 앉아보세요. 정말 편해요.”

서씨는 13년차 가방 디자이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패션 회사에 공채로 입사하면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공이 도예인지라 그릇에는 늘 관심이 많았다. 6년 전, 유럽에서 가장 큰 가마를 갖고 있다는 ‘아라비아 핀란드’를 보러 헬싱키에 갔다가 ‘알바 알토(1898~1976) 하우스’에 들른 것이 화근(?)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살던 집이라기엔 너무 소박하고 포근했어요. 집 안 가구들도 알바 알토가 직접 디자인했는데, 아 저런 가구를 갖고 싶다,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죠.”

한 번 관심이 생기니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북유럽의 집과 가구에 대한 책을 있는대로 사 모았고, 그 안에서 덴마크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 가구 디자이너 한스 베그너, 산업디자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디터 람스 등의 작품을 만났다. 마침 오피스텔 생활을 접고 작은 아파트를 장만해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려던 때였다.

“3000만원 정도를 들여 디터 람스의 소파 등을 구입해 방 하나를 꾸몄어요. 책에서 보고 감탄하던 가구들이 우리 집 거실에 와 있다니, 정말 짜릿하더라구요.” 무엇보다 감동했던 건, 몸에 착 감겨드는 북유럽 가구들의 놀라운 편안함이라고 했다.

수십년 전 제작된 빈티지 가구의 매력은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집 안에 놓인 가구들 역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을 들여 수소문해 찾아냈다. 특히 방 하나를 메우고 있는 알바 알토의 가구들은 운명처럼 만났다. “알바 알토 제품은 워낙 유럽에서도 구입하기 어려워요. 핀란드의 90세가 넘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40년 넘게 사용하던 것들인데, 아들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통째로 경매에 내놓은 걸 운 좋게 발견했죠.” 1930년대 초 알바 알토가 요양원의 요청을 받아 만들었다는 파이미오(Paimio) 의자와 낮은 목재 테이블, 티 트롤리(차 운반대) 등이 “공간에 딱 들러붙은 듯 묵직하게” 작은 방을 채웠다.

5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거실 선반. 조각조각 구입해 완벽하게 모습을 갖추는 데 5년이 걸렸다.

5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거실 선반. 조각조각 구입해 완벽하게 모습을 갖추는 데 5년이 걸렸다.

6 식기회사 아라비아 핀란드의 스테인리스 조리 도구.

6 식기회사 아라비아 핀란드의 스테인리스 조리 도구.

조명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가구

천장이 높고 널찍한 주택에 맞춰져 제작된 북유럽 가구는 층고가 낮은 한국 아파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씨가 모르는 이들에게 집을 공개하기로 한 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집은 천장 높이가 230cm 남짓한 보통 아파트에요. 덩치가 큰 가구들을 이런 곳에 놓으면 당연히 답답하고 눌리는 느낌이 들죠. 크기가 너무 크지 않은 것들을 사되 컬러감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북유럽 가구 중에는 쨍한 원색의 제품들도 많은데, 아무래도 어둡지 않은 나무색 가구가 한국 아파트에는 잘 어울려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욕심 줄이기다. 그는 “방에 3개의 가구를 놓고 싶으면 2개만 사라고 조언한다. 빈티지 가구는 공간을 적절히 비워놓을 때 제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안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명이다. 그는 어떤 램프를 달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 후, 빛이 만들어내는 색감에 맞춰 가구들을 배치한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톤인 나무 가구들 사이에서 화려한 조명이 포인트 장식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거실에는 1950년대 프랑스 루넬사에서 제작한 조명 디자이너 르네 마티유의 조명을 달았어요. 프랑스·이탈리아 조명은 빛이 섬세하고 잘게 분사돼요. 북유럽의 집들은 한 공간에 여러 개의 간접 조명을 써서 포근한 분위기를 내죠.”

빈티지 가구는 물론 비싸다. 하지만 모든 가구가 샐러리맨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한 가격은 아니다. 그가 책상으로 사용하는 동그란 목재 테이블은 네덜란드 디자이너 시즈 브락만이 디자인한 제품으로 테이블과 의자 4개 세트가 500~600만원 정도다. 거실의 한스 베그너 소파가 집안 가구 중 비싼 편으로 1700만원 정도에 구입했다. “목돈이 들지만 평생 놓아두고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행히 옷이나 시계, 전자제품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돈은 버는 족족 가구를 사는 들어간다.

‘쇼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판매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 빈티지 가구란 애초 공급이 한정돼 있어 원한다고 무작정 판매를 할 수도 없다. 인스타그램(Kaunis_koti) 등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과는 소파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가구 이야기를 하고, 원하는 제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빈티지 가구로 공간을 꾸미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틈틈이 컨설팅도 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일본 도쿄의 크고 작은 소품 가게들을 소개하는 『도쿄 숍』이란 책을 출간했고, ‘미드센추리 서울(mid-seoul.com)’이라는 라이프스타일 웹진도 시작했다. “제가 오지랖이 넓은 편이에요. 좋은 걸 권해 주고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멋진 가구를 매개로 해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식과 취향을 나누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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