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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수사, 의원에도 요청권 주면 정치에 휘둘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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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을 검찰개혁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 권한을 검찰에서 떼어내 공수처에 주면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을 수 있고, 정권으로부터 검찰의 독립성도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박범계·이용주 의원 법안 문제점 #공수처, 공직자 비리 수사로만 한정 #뇌물 준 기업은 수사 못하게 될 수도

조국 신임 민정수석은 11일 “공수처는 검찰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공수처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될지는 지난해 8월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두 의원은 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 수사가 경찰·검찰·특검으로 이어졌지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해 한계를 드러냈다. 검찰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부패가 심화되고 있어 독립된 위치에서 엄정 수사하고 기소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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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률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금의 검찰처럼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을 모두 갖는다. 하지만 대통령·사법부·국회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운영된다. 수사 범위와 대상은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들로 제한된다. 대통령은 전직만 해당되며 국회의원과 검사·법관·지치단체장·장관급 군인 등이 포함된다. 공수처는 자체적으로 범죄 단서를 포착하거나 감사원·국가인권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의 수사 의뢰가 있을 때 수사에 착수하도록 돼 있다. 국회의원 30명 이상이 수사 요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공수처 수사는 특별검사 19명과 특별수사관들이 담당하도록 했다. 조직의 규모는 고등검찰청 규모다. 처장 자격은 ‘판사·검사·변호사나 대학의 법률학 조교수 중 15년 이상 재직한 사람’으로 정했다. 임명은 대통령이 하지만 별도의 인사추천위원회의 추천과 국회의 인사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법률 제정을 통해 공수처를 만들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수다. 여소야대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헌법과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공수처 신설을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 일로 마무리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행정·사법·입법부로부터 독립된 수사기관이 생긴다면 헌법 원리 밖에 국가 기관이 존재하는 초법적인 사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요청으로도 수사가 착수되는 것은 정치 권력의 영향력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직 고위 검찰 간부는 “작은 검찰을 하나 더 만들어 수사기관만 늘어나는 옥상옥 구조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직자 비리 수사는 뇌물과 관련돼 기업 수사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수사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결국 절름발이 수사가 되거나 검찰과 역할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용주 의원은 “법률 안에 기업 수사를 가능하게 해 놓았고 검찰과 함께 수사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맡았던 김선수 변호사는 “검찰개혁의 과정에서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은 과도기적 방안이다. 궁극적으로 검찰이 기소만 담당하게 되면 법률 개정을 통해 공수처를 기소 권한 없는 수사기관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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