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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카지노 네온사인, 다른 속도로 가는 668개 시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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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전면을 장식한 코디최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번쩍이는 네온사인 작품에 관람객들이 몰리며 한국관은 인기 국가관으로 떠올랐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전면을 장식한코디최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번쩍이는 네온사인 작품에 관람객들이 몰리며 한국관은 인기 국가관으로 떠올랐다.[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베니스의 ‘자르디니’(공원)에는 비엔날레 122년 역사 동안 하나 둘씩 생긴 국가관 30개가 모여있다. 그들 중 마지막으로(1995년) 안쪽 구석에 세워진 한국관을 찾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공식 개막(13일)을 앞두고 여러 국가관들의 사전 개막식이 열린 지난 10일(현지시각),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관을 찾기는 꽤 쉬웠다. 전면이 라스베이거스나 마카오를 연상시키는 요란한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데다가 그 앞에 많은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가보니 #미술계 허세 풍자한 코디최 작품 #한 끼 위한 노동 표현한 이완 연작 #“한국 근대 3개 세대 대변한 전시”

네온사인은 코디최(Cody Choi·본명 최현주·56) 작가의 작품 ‘베네치아 랩소디.’ 그와 이완(38) 작가, 이대형 예술감독(43)이 전시를 맡은 올해 한국관은 다국적 미술시장매체 ‘아트넷’의 보도대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그 네온사인과 괴짜 같은 내부 구성으로 일찍부터 인기 국가관으로 떠올랐다.” 또 다른 미술시장 매체인 영국의 ‘아트 뉴스페이퍼’는 87개의 국가관 전시(상설 국가관 없는 나라들 포함) 중에 8개 하이라이트를 뽑으면서 한국관을 포함시켰다.

이완 작가의 ‘더 밝은 내일을 위하여’.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완 작가의 ‘더 밝은 내일을위하여’.[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네온사인 작품에 대해 최 작가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허세”를 풍자하는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작가들은 스타처럼 굴고, 미술평론가와 화상들은 새 예술가를 찾는다며 모이지만 사실 새 비즈니스 라인 트는 게 목적”이며 “베니스가 라스베이거스와 다를 바 없다”는 것. 또한, 투기적 금융자본에 휘둘리는 현실을 가리키는 말 ‘카지노 자본주의’를 함의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처럼,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 베니스비엔날레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이다. 초창기에 있던 아트페어적 성격이 68년에 사라지고 비상업적 행사로 탈바꿈했으나, 여전히 아트딜러와 컬렉터들이 ‘새롭게 팔릴 작가’들을 물색하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인 국제전에 초대된 이수경 작가도 그런 경우를 언급했다. 총 120명의 참여 작가 중 한국인은 그와 김성환 작가 둘이다. 이 작가는 도자기 파편을 결합한 장대한 조각 ‘신기한 나라의 아홉 용’으로 관람객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작품에 대해 심도 있게 묻는 사람들보다 (팔기 좋은) 작은 버전 없냐고만 묻는 갤러리스트들이 많아 기분이 떨떠름했다”고 10일 전시 현장에서 털어놓았다.

이완 작가의 ‘메이드 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완 작가의 ‘메이드 인’.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또한 세계주의에서도 모순된 면이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초창기의 국가대항전적인 성격을 버리고 국경을 초월한 예술의 속성을 강조해왔다. 올해 본전시 주제를 ‘비바, 아르테, 비바 (만세, 예술, 만세)’로 잡은 베니스비엔날레 사상 4번째 여성 감독 크리스틴 마셀은 예술의 경계초월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본전시의 아홉 섹션을 아홉 개의 ‘초월국가관(Trans-Pavilion)’으로 명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관이 존재하고 경쟁하는 게 현실인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과거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로, 그 후 자유무역과 베니스비엔날레 등의 국제행사로 세계화를 추진해왔던 서구세계에서 신(新)고립주의와 신국가주의가 앞다투어 발흥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올해 한국관의 주제는 ‘카운터밸런스(Counterbalance)’다. “비서구권으로서, 또한 과거 식민지로서, 근대화와 세계화를 겪은 한국관이 그 경험과 시각으로 균형을 잡아주겠다는 것”이라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왼쪽부터 이완, 이대형, 코디최.

왼쪽부터 이완, 이대형, 코디최.

한국관 전시에서 최 작가는 그가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온몸으로 겪은 문화충돌을 드러내는 시기별 대표작들로 보여준다. 핫핑크 조각 ‘생각하는 사람’이 그 중 대표작이다. 그간 서구화된 교육을 받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서양과 실제 서양이 너무도 다른 것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몇 년 간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미국의 분홍색 국민 위장약 펩토비스몰를 복용했다. 그러다 서양 철학의 시각적 구현과도 같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그 위장약을 물들인 화장실 휴지로 재탄생시켜 그 엄숙함을 희화화하는 동시에 비서구인으로서 그 ‘소화’의 진정한 가능성을 물은 것이다.

한편 한국관의 이완 작가 전시실에는 설치작품 ‘Mr. K 그리고 한국사 수집’과 비디오 및 오브제 연작 ‘메이드-인’이 마주 보고 있다. ‘미스터 K’는 작가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실존인물 김기문(1936~2011)씨의 가족앨범 및 잡다한 유품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역사와 뒤섞인 한국 근대사를 추적하고 재구성한 작품이다. ‘메이드-인’ 시리즈는 자유무역체제에서 보통 국제분업으로 생산되는 설탕이나 셔츠 같은 소비재를 작가가 한국 포함 아시아 10여 개 국에 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든 과정을 담은 영상과 그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각 아시아 국가의 근대화 과정과 노동의 여건도 드러난다.

그들 사이의 작은 문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순백의 공간에 설치된 ‘고유시’를 만나게 된다. 사면의 벽에 668개의 시계가 걸려있는데 작가가 온오프라인으로 인터뷰한 668명의 이름·출생년도·국적·직업이 새겨져 있다. 각 시계는 각 개인이 한 끼 식사 값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의 차이만큼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이 감독은 “미스터 K, 코디최, 그리고 이완이 한국 근대 3개 세대를 대변한다. 그 세대 개인의 역사, 그것에 영향 미친 한국의 역사, 나아가 아시아의 역사, 그들에 영향 끼친 세계사적 맥락,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균형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전시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았다. 9일 한국관을 방문한 뉴욕 휘트니 미국미술관장 애덤 D 웨인버그는 “지금까지 본 최고의 국가관 전시 중 하나다. 코디최의 작품은 한가지 정서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이완의 작품과 좋은 조화와 보완을 이룬다”라고 평했다.

10일 한국관을 방문한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지금까지 어떤 전시보다도 한국관 공간 활용이 잘 된 전시”라며 “공간과 부조화를 이루는 부분이 전혀 없다”고 평했다.

베니스=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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