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패배한 보수, 뼈 깎는 자성으로 거듭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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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로써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집권당으로 군림해 온 보수당은 9년 권력을 빼앗기고 야당으로 전락했다.

한국당과 홍 후보의 패배는 그들의 행적을 보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국당을 주도해 온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주에 편승해 권력을 탐닉해 왔고, 4·13 총선에서 ‘막장공천’으로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다가 대통령 탄핵이란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분노한 민심에 밀린 한국당 지도부는 마지못해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진박’들에게 당원권 정지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지만 이마저 대선 이틀 전 철회했다. ‘도로 친박당’이란 비아냥 속에 다시 한번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영남 지역의 지지를 업고 대선 막판 상승세를 보여온 홍 후보가 그 흐름을 이어 가지 못하고 패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교만과 독선으로 보수진영이 궤멸의 위기에 몰린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보수는 원래 안보와 질서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한 책임과 헌신, 그리고 약자와 서민에 대한 배려를 핵심 가치로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런 가치들은 실종되고 부정과 부패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보수정치에 덧씌워졌다.

이제 야당이 된 한국당은 뼈를 깎는 자성 속에서 보수의 가치부터 재확립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책임정치다. 국정 농단 사태에 책임이 큰 친박계와 과감히 결별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개혁 어젠다를 채택해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새 정부에 협력해야 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초기 인사청문회부터 정책 위주의 큰 틀을 따져야지 예전처럼 오래전 사소한 흠집을 캐내 꼬투리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보수 야당이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와 함께 ‘개혁 보수’를 외치며 이번 대선에서 선전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존재도 눈에 띈다. 유 후보는 같은 당 의원 10여 명이 한국당으로 이탈하는 위기 속에서도 레이스를 완주했다. 또 TV토론에서 보여준 소신과 정책 콘텐트는 ‘새 정치’ 가능성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로 합리적·개혁적 보수의 가치 구현에 힘쓴다면 보수의 재건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의 양 날개다. 건강한 보수의 존재는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의 균형과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