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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중국산 여객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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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현철
나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중대형 여객기 제작은 대표적인 글로벌 독과점 산업이다. 미국 보잉과 유럽 에어버스가 세계 시장을 절반씩 차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만 해도 미국의 맥도널더글러스(MD), 러시아 투폴레프 여객기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1950년대 현대적인 제트 여객기 시대를 연 것은 영국의 코메트였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회사에 합병됐거나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여객기를 원하는 수요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항공산업은 시장이 커지는 속도 못지않게 요금 인하 압박이 크기로 악명이 높다. 이를 못 이기고 파산한 대형 항공사가 여럿이다.

여객기 제작은 글로벌 협업 과정이기도 하다. 에어버스 본사와 조립공장은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있다. 그러나 전방 동체와 객실, 날개, 엔진은 스페인과 독일, 영국에서 만든다. 보잉 787 드림라이너도 전방 동체와 날개·날개 끝(윙팁)을 각각 미국과 일본, 한국에서 공급받는다. 엔진은 영국 롤스로이스와 미국 GE, 출입구는 프랑스 회사 제품이다. 보잉이 직접 만드는 건 후방 동체와 수직 꼬리날개 정도다. 그럼에도 787은 보잉 제품이다. 다양한 부품을 통합해 비행기를 날게 하는 핵심 설계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다.

‘넘사벽’에 가까운 이들 ‘빅2’ 탓에 다른 나라는 중대형 여객기 시장을 넘볼 엄두를 못 내왔다. 캐나다 봄바디어와 브라질 엠브라에르 등이 오랫동안 소형 항공기에 특화하는 전략을 펼쳐온 이유다. 항공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본조차 2015년에야 70~90인승 ‘미쓰비시 MRJ’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상용항공기(COMAC·코맥)가 독자 개발한 코맥 C919가 지난 5일 첫비행을 했다. 에어버스 A320이나 보잉 737과 비슷하게 170명을 태울 수 있는 크기다. 흔한 중국산 짝퉁 취급하면 오산이다. 중국은 70년대부터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의 지원을 업고 국산 여객기(Y-10) 개발을 추진했다. 막대한 개발자금을 견디지 못하고 86년 정부의 명령으로 개발을 포기했지만 이후에도 꿈을 접지 않았다. 2002년 맥도널더글러스의 기술을 이용해 개발하기 시작한 80인승 코맥 ARJ21은 이미 중국 내에서 140여 대가 운항 중이다. 코맥은 투폴레프와 손잡고 747급 대형 여객기 개발에도 나설 예정이다. 94년 한·중 정상회담에서 100인승 여객기 공동개발에 합의했지만 외환위기로 포기해야 했던 우리의 항공산업사가 새삼 뼈아프다.

나현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