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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모의 효, 자식의 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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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양영유논설위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간병의 고충과 부담이 커 견디기 힘들다는 뜻일 게다. 얼마 전에는 반신불수 아버지를 모시던 아들이 끝내 천륜을 역행하고 말았다. 효와 현실의 충돌이 부른 비극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1889~1975)가 “한국의 생명수는 효”라고 극찬하며 눈물까지 흘렸다는 게 1973년의 일인데 세태가 참 많이 변했다. 존속살해·상해·폭행 건수가 연간 1000건을 넘으니 말이다.

메마른 세태를 경계하듯 해마다 감동을 주는 효자·효부상은 오아시스와 같다.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한다. 41년간 시어머니를 모시며 치매까지 극복해 가는 65세 며느리, 105세 노모를 혼정신성(昏定晨省)한 80세 아들, 팔순의 장애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 캄보디아 새댁…. 가슴 뭉클한 효행이 방방곡곡에 전파된다.

5월 가정의 달, 특히 어버이날에 그런 사연을 접하면 더 숙연해진다. 정부가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한 것은 44년 전이다. 1956년부터 매년 같은 날을 어머니날로 기념해오다 73년 어버이날로 개칭했다. 우리와 달리 대부분의 국가는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별도로 둔다.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80여 개국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 60여 개국은 6월 셋째 주 일요일이 아버지날이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거나 카네이션 등을 선물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전통적인 스킨십이 디지털 시대에 줄어들고 있다. 어버이날의 꽃인 카네이션을 가슴에 다는 부모들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어버이날 직전 10일간의 카네이션 거래량은 2011년 560만8860송이에서 올해는 309만4320송이로 44.8%가 줄었다. 현금·여행·상품권 등 실용적 선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디지털 문안’이 많아진 때문이라는데 씁쓸하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의 인식 차도 확연하다. 부모는 자식이 자주 찾아오거나 안부 전화를 하는 ‘정서적 문안’을, 자식은 병간호나 경제적 지원을 최고의 효라고 여긴다고 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부모는 마음을, 자식은 물질을 중시하는 것이다. 부모 생각, 자식 생각이 다르다 보니 재산을 물려줄 때 ‘효도계약서’를 작성하고 ‘불효자방지법’까지 만들자는 세상이다. 그런데 대선주자들이 부양의무제마저 폐지하겠다니 걱정이다. “한국의 효는 인류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고 한 토인비의 말이 이젠 유효하지 않은 걸까.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