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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홀 한 홀 ‘닥공’ 통했다 ‘황홀한 매치퀸’ 김세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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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멕시코 전통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김세영(오른쪽 둘째)이 박세리(왼쪽 둘째)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대회 주최자인 로레나 오초아(오른쪽), 왼쪽은 줄리 잉크스터. [멕시코시티 AP=뉴시스]

멕시코 전통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김세영(오른쪽 둘째)이 박세리(왼쪽 둘째)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오른쪽은 대회 주최자인 로레나 오초아(오른쪽), 왼쪽은 줄리 잉크스터. [멕시코시티 AP=뉴시스]

2015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한 김세영(24·미래에셋)의 트레이드마크는 ‘닥공(닥치고 공격) 골프’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70야드를 넘는 장타를 앞세워 항상 공격적으로 코스를 공략한다는 뜻이다. 드라이브샷 뿐만 아니라 퍼트도 과감하다. ‘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공을 홀까지 보내지 못하면 절대 넣을 수 없다는 뜻)’이라는 골프 격언처럼 퍼트를 짧게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김세영의 아버지조차 “홀에 붙인다는 느낌으로 퍼트를 하면 좋을 텐데 너무 과감한 편”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그래서 3퍼트도 종종 한다.

쭈타누깐 꺾고 LPGA 오초아 우승 #홀마다 승패 가리는 매치플레이 #공격 본능의 김세영과 궁합 맞아 #11개월 만에 우승, 통산 6승째 #허미정 3위, 미셸 위에 대역전승

공격적인 스타일이 잘 맞아떨어지는 날에는 ‘폭주기관차’처럼 질주한다. 지난해 JTBC 파운더스 컵에서는 합계 27언더파로 LPGA투어 최다 언더파 타이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하지만 드라이버와 퍼트가 흔들리면 급격하게 스코어가 나빠지는 등 기복이 심하다.

두 선수가 1대1로 맞붙는 매치플레이는 ‘닥공’ 김세영과 궁합이 잘 맞는다. 큰 실수가 나오더라도 스트로크 플레이처럼 스코어가 합산되지 않고 그 홀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홀에서 곧바로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 같은 방식 덕분에 김세영의 ‘닥공’은 5년 만에 부활한 LPGA투어 매치플레이에서 단연 빛났다.

김세영

김세영

김세영이 8일 멕시코시티의 멕시코 골프장(파72)에서 끝난 LPGA투어 시티바나멕스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 결승전에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을 1홀 차로 꺾고 우승했다. 지난해 6월 마이어 클래식 이후 11개월 만에 우승을 추가한 김세영은 통산 6승째를 신고했다. 우승상금은 24만달러(약 2억7000만원).

해발 2300m 고지대에 위치한 멕시코 골프장은 장타자에게 유리한 코스다. 전장이 6804야드나 된다. 고도가 높아 선수들의 평균 샷 거리가 10% 정도 더 멀리 나간다해도 장타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김세영과 쭈타누깐은 장타를 무기로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김세영은 결승전에서도 ‘닥공’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1번 홀 버디를 잡은 김세영은 2번 홀(파5)에서 과감한 공략으로 이글을 낚으며 상대의 기를 꺾었다. 3번 홀에서도 버디를 낚으며 3홀 차로 앞서 나갔다.

김세영은 준결승까지 5경기를 하는 동안 단 4홀만 뒤졌을 정도로 초반부터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결승전에서도 위기도 있었다. 17번 홀(파5) 티샷이 우측으로 크게 밀리면서 아웃오브바운스(OB) 구역에 떨어지는 바람에 김세영은 보기를 했다. 지난해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던 쭈타누깐은 이 홀에서 가볍게 버디를 낚으며 1홀 차로 따라붙었다. 스트로크 플레이 같았으면 스코어가 역전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18번 홀에서 김세영은 두번째 샷을 홀 3m 거리에 붙여 버디 기회를 잡았다. 쭈타누깐도 비슷한 거리에서 버디 퍼트를 남겨뒀다. 먼저 퍼터를 잡은 김세영의 퍼트가 홀을 외면했지만 쭈타누깐도 버디에 실패해 그대로 승부가 끝났다. 김세영은 “이기고 있어도 항상 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쭈타누깐이 공격적인 선수여서 3홀 차로 앞서고 있어도 방심할 수 없었다”며 “18번 홀에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과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이렇게 힘들었던 우승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매치플레이의 여왕’으로 거듭난 김세영은 대회 호스트인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물론 박세리(40), 줄리 잉크스터(미국),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타들과 함께 시상대에 섰다.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설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어올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세영은 이날 우승으로 세계랭킹 12위에서 8위로 뛰어올랐다.

허미정(28·대방건설)은 미셸 위(미국)와의 3-4위전에서 10번홀까지 5홀 차로 뒤졌지만 막판 뒷심을 발휘한 끝에 대역전승을 거뒀다. 허미정은 18번홀까지 동타를 이룬 뒤 22번째 홀에서 천금같은 버디를 낚아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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