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판단 뒤집은 헌재…"결혼 전 구입한 TV는 개인 소유, 부숴도 처벌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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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TV. [사진 Alamo TV Repair]

부서진 TV. [사진 Alamo TV Repair]

지난 2016년 1월, 결혼한 지 두 달 된 A씨는 새벽에 TV로 영화를 검색하다 아내와 말다툼을 벌였다. 아내는 A씨가 리모콘을 붙들고 있자 “여자 연예인 광고가 나오는 게 싫으니 검색을 그만하라”고 짜증을 냈다. 순간 화가 난 A씨가 TV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화면이 깨졌다.

부부싸움 [일러스트=강일구]

부부싸움 [일러스트=강일구]

아내는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됐다. 인천지검은 A씨의 재물손괴 혐의가 성립한다고 보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는 죄는 인정되나 죄질과 전과 등을 고려해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검찰 단계의 선처다.

하지만 A씨는 검찰의 처분에 불복했다.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망가뜨리는 범죄인데, TV모니터는 결혼 6개월 전 중고로 15만원에 산 내 고유 재산이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차별적 공권력 행사 때문에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민법은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A씨가 부순 TV모니터를 부부의 공동 소유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TV모니터는 이씨의 고유재산인 만큼 이를 망가뜨렸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재물을 손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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