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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민생은 중대하게, 국법은 존엄하게 … 공정한 경쟁 룰 세워 공공성 회복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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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러스트=강일구]

[일러스트=강일구]

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당선 확정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될 제19대 대통령은 국가 리더십의 공백을 메우고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모아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가야 한다. 막중한 역사적 책임을 안을 새 대통령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동서양 고전에서 뽑아봤다. 경제 활성화와 공공성 확립을 강조하고, 삼권 분립과 법치주의의 정신을 되새기는 구절들이다.

새 대통령이 되새겨야 할 동서양 고전의 가르침

논공행상 말고 국민 살림살이 챙겨야

"산 사람을 돌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유감이 없어야 한다.” - 맹자 『맹자』 ‘양혜왕’ 상3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대통령 선거 유세가 시작되면서 안보와 외교, 정치와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쟁점이 제기되었다. 여러 주제가 부각되지만 많은 국민은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경제 활성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의 중요성은 제자백가들도 누누이 강조하던 사항이다. 관자는 “곳간이 가득 차야 사람이 예절을 차릴 줄 알고 의식이 남아야 사람이 영광과 치욕을 구별할 줄 안다”며 경제 제일주의에 가까운 말을 했다. 흔히 유가하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고담준론을 즐기는 학파로 취급되지만 이건 명백한 오해다. 맹자는 사람이 흉년과 풍년, 즉 경기 불황과 호황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풍년(호황)이면 집앞을 지나가는 길손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지만 흉년(불황)이면 음식을 구걸하는 사람에게 매몰차게 거절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도덕군자와 같은 고상한 존재가 되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연신 나는데 그 소리를 모른 척하고 도덕만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맹자는 사랑과 정의 그리고 연대와 도의가 살아있는 세상을 만들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위정자들에게 요구했다.

먼저 “산 사람을 돌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최소한 도리를 못해 유감스럽게 느끼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륜을 지키는 왕도 정치의 시작이다(양생상사무감 왕도지시야·養生喪死無憾 王道之始也)”라고 주장했다. 출산과 육아를 염려하여 결혼을 주저하고 일자리를 찾느라 실패를 거듭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은퇴 이후의 삶을 대비할 수 없다면, 양생상사에 ‘무감’이 아니라 ‘유감’이 되므로 왕도의 정치에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또 여민해락(與民偕樂)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위정자들이 제 주머니 채우기에만 급급하다면 원망의 소리가 드높게 된다. 원망의 소리가 계속 쌓이면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제 자신과 패거리를 위한 정치가 되어버린다. 지도자가 지도자이기를 거부하면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내려와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끌려 내려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지도자를 탄핵하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의 논리이다.

차기 대통령은 승리에 도취하여 논공행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지 공감하고 알맞은 정책 개발과 실행에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양생상사무감’의 왕도 정치에 대한 희망을 품을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강자·부자보다 사회적 약자 먼저 배려

"민생은 중대하게 국법은 존엄하게” - 정약용 『여유당전서』 ‘경기어사 명을 수행한 후 논한 소’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대통령 선거가 목전에 다가왔다. 통치자라면 어떤 자격을 지니고 어떻게 행정을 펴야 하는가를 『목민심서』라는 통치 철학의 저서를 통해 정밀하게 기술했던 다산 정약용에게서 배워보자. 전제군주 시대였던 당시 다산은 ‘목민관(牧民官)’이라 호칭했지만, 북한학자들은 통치자로 번역했던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목민관은 오늘로 보면 대통령에 견줄 수 있다고 여긴다.

33세의 젊은 관료 정약용은 왕명에 따라 암행어사로 경기 북부지방 네 개 고을을 염찰하고 돌아와 임금에게 복명서를 올렸다. 무거운 세금과 군역에 찌들고 탐관오리의 횡포와 착취로 죽기 직전인 백성의 실태와 농촌의 현장을 목격한 뒤라서 다산은 통치자라면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가를 상세히 상주(上奏·임금께 아뢰다)했다.

통치의 대원칙부터 천명했다. “민생을 중대하게 여기고 국법도 존엄하게 해야 한다(以重民生 以尊國法)”는 여덟 글자였다.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고 국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민생을 중대하게 여기라는 각론은 『목민심서』의 애민(愛民)편으로 정리했다. 다산은 백성의 삶을 돌보는 일이 바로 “통치자의 첫 번째 임무(誠牧民之首務)”라 전제하고, 사랑하고 보살펴주어야 할 백성을 특정해 노인·유아·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상을 당한 사람·중병환자·장애인·재난을 당한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이 나라의 도움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자나 권력자보다는 일반 백성,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약자의 삶을 돌봐주는 일이 통치자의 급선무라고 여겼다.

다음으로 국법은 어떻게 해야 존엄해질 수 있는가. 다산은 단도직입적으로 “법의 적용은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用法 宜自近習始)”고 말하여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법언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했다. 약자들만 법의 적용을 받고 강자들은 법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면 법의 존엄성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뜻에서였다.

다산의 뜻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은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하다. 강자나 부자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를 먼저 보살피는 사람이어야 하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함을 인식하여 자신의 수족이라도 범법자는 엄벌하는 능력자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다산 경세철학의 핵심인 ‘공렴(公廉)’으로 행정을 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지녀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사(私)는 억누르고 공(公)을 앞세워 절대로 부패하지 않을 청렴(廉)한 지도자를 기대한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청와대·국회·시민사회가 견제·협력을

"집정관·원로원·호민관이 서로 협력하며 위기에 대응했기 때문에 로마 헌법은 최고의 헌법이 될 수 있었다.” - 폴리비우스 『역사』 제 6권 18절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험난한 길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당신 앞에 놓여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군사적 긴장감이 한반도를 휘감고 있고,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했던 세력은 엄존해 있다. 부의 불균형적 분배, 노령화, 교육의 황폐화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와 함께 우리의 미래를 숨 막히게 한다. 이런 상태를 고전에서는 아포리아(Aporia) 상태라고 했다. ‘길 없음’ ‘해결책 없음’이라는 뜻이다. 당신은 아포리아 시대의 대통령이다.

로마인들에게 기원전 3세기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로마인들은 우선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에 기가 죽었다. 큰 신장과 강인한 체력을 가졌던 게르만 족들 앞에서 늘 무력감을 느꼈다. 로마인들에게 가장 두려웠던 존재는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카르타고 군대였다. 기원전 218년, 코끼리 부대를 앞세우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남하한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대는 16년간 이탈리아 반도를 유린했다. 그런데 기원전 202년, 로마의 주력군은 자마(Zama)에서 한니발의 군대를 무찌르고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게 된다. 로마가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역사가 폴리비우스는 궁금했다. 그리스인의 문명, 게르만인의 체격, 카르타고인의 군사력에 눌려있던 로마는 어떻게 기원전 3세기의 아포리아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폴리비우스는 『역사』란 책에서 이 의문을 풀어내고 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로마가 그리스·게르만·카르타고의 삼각 편대를 무찌를 수 있었던 이유는 권력의 정점에 있던 집정관,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원로원, 그리고 호민관으로 상징되는 일반 시민들이 서로 철저하게 견제하면서,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기 때문이었다. 최근 중국은 문화적 우월감으로 우리를 깔보고 있고, 미국은 우리에게 사드라는 근육으로 힘자랑을 해대고 있다. 또 핵무기로 겁박하는 북한은 우리에게 늘 카르타고와 같은 존재였다. 기원전 3세기의 로마처럼 우리는 지금 중국·미국·북한이라는 삼각편대가 휘두르는 완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 아포리아 시대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당신은 『역사』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원전 3세기의 로마가 집정관과 원로원, 그리고 일반시민들이 서로 권력을 견제해 나가며 힘을 합쳤을 때, 아포리아가 극복됐다.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일반 시민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은 서로 견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전의 가르침이며,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삼권분립의 정신이기도 하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 선서대로 헌법정신을 받드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 대체하면 안 돼

"새로운 군주에게 새로운 법과 제도를 창안하는 것처럼 커다란 명예를 가져다주는 일은 없다.” - 마키아벨리 『군주론』 26장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흔히 『군주론』은 지도자 개인의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한 저서로만 이해돼왔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국가존립의 위기 상황 속에서 국가 공동체를 부강하게 할 지도자를 위해 『군주론』을 저술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분열돼 있었다. 그 기회를 틈타 유럽 강대국들은 이탈리아를 침입했다. 통일되고 강력한 나라 건설이 당시 이탈리아 지도자의 과제였다. 위에 인용한 구절은 『군주론』의 마지막 장에 나오는 말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렇다.

“이탈리아에서 개개인들에게는 탁월한 역량이 잠재해 있는데, 지도자들은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결투나 적은 수의 사람들이 싸울 때, 이탈리아인들의 힘, 능력 및 재주가 얼마나 탁월한가를 보라. 그러나 일단 군대라는 형태로 싸우는 일에서는 결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은 지도자의 유약함에서 비롯된다.”

지도자는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나라를 정비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핵심은 공공성의 확립이며, 그것은 국민들의 능력을 계발시킨다. 공정한 경쟁의 룰은 인재를 키우고, 적재적소에 배치시킨다. 이것이 바로 지도자의 임무이다. 그것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의 공공성 쇠락을 경험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위임된 권력을 공공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으로 사용한 권력자에 분노를 느꼈다. 공공성의 쇠락은 공교육의 붕괴에서도 느껴진다. 최근 금수저·흙수저 같은 ‘수저계급론’이나 ‘헬조선’ 같은 단어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핵심은 사회 계층이 고정화 되어 능력 계발을 통한 신분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교육의 붕괴와 밀접히 연관된다. 과거 신분이동의 핵심적 수단은 교육이었다. 하지만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하면서 부모의 소득수준이 학생들의 교육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의 노력과 능력이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의 좋은 운을 극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적 영역이 공적 영역을 대체하면 그 사회는 신분제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소수의 좋은 조건에 놓인 사람들만 행복하고, 나머지 다수는 좌절과 실망에 빠지게 된다. 공동체의 붕괴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유와 평등을 유지하는 공공성이 무너진 사회는 시민들의 반목과 질시 속에 속빈 강정이 돼버린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새로운 지도자에게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공공성의 회복을 바랬다. 그것만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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