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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할 수 있는 군대 ’ 합헌화 추진 … 아베, 우회 개헌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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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개헌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현행 헌법 시행 70돌인 3일 개헌 일정을 내놓았다. 핵심 조항인 9조 개정의 방향도 밝혔다. 2012년 말 재집권 이래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원칙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기 시작했다. 개헌은 보수주의자 아베의 원점이다.

기존 규정 손 안 대고 자위대만 기술 #수위 낮춰 물꼬부터 트려는 의도 #도쿄올림픽 열리는 해 시행 계획

아베가 이날 밝힌 계획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개헌을 완료하겠다는 것이다. 아베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이) 선진국으로 급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 2020년은 새 헌법 시행을 지향하는 데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에 헌법을 시행하겠다는 것인 만큼 개헌은 2019년께 끝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2년 동안 아베의 개헌 드라이브가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개헌 내용은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현행 9조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9조 의 1항은 ‘국권의 발동에 의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영구히 포기한다’고 돼 있다. 2항은 ‘전 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현행 헌법을 평화 헌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조항이다. 여기에 새로 자위대 기술을 넣어 자위대 합헌화를 꾀하겠다는 얘기다.

9조의 기존 조항을 유지하겠다는 데는 일단 개헌의 물꼬부터 트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9조 개정에 저항이 큰 야당과 국민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마이니치신문의 3일자 조사 결과 개헌 찬성은 48%로 반대(33%)보다 높았지만, 9조 개정에는 46%가 반대하고 찬성은 30%로 나타났다.

아베의 이런 구상은 9조 개정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나라’를 명시하지 않아도 기존의 헌법 해석 변경으로 그 길이 열린 점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2014년 일본이 공격받지 않아도 반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했고, 이는 이듬해 성립된 안보법제에 반영돼 있다. 9조에 자위대 기술을 넣으면 9조 개정에 심혈을 기울여 온 우파 세력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실제 아베의 이 구상은 2012년 자민당이 공표한 개헌안 초안보다 개정의 수위가 낮다. 자민당 초안은 ‘국방군’ 보유 등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상 자위대 기술은 자위대의 위헌 논란을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9조의 ‘전력 불(不) 보유’ 규정으로 자위대는 위헌 시비에 휘말려 왔다. 현재 자위대는 말이 자위대이지 실상은 보통의 군대와 다름이 없다. 새 안보법제로 활동 반경의 제한이 사실상 없어졌다. 무기체계와 장비는 세계적 수준이다.

자위대가 헌법에 명기돼 합헌화되면 위상은 지금보다 더 올라가게 된다. 개헌이 일단 이뤄지면 그다음 단계로 9조를 손대는 개헌이 보다 쉬워질 수도 있다.

아베의 이번 개헌 구상에 따라 자민당은 국회에서 개헌 논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개헌 문제는 중·참의원 양원에 설치된 헌법심사회에서 논의 중이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9조 개정 등을 둘러싼 개헌 세력 간, 여야 입장차 때문이다. 아베가 개헌을 서두르는 만큼 자민당은 새로 개헌 초안을 마련해 야당을 압박해 나갈 전망이다. 아베의 개헌 구상이 실현될지는 내년까지 치러질 중의원 선거와 2019년의 참의원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많다. 개헌안 발의에는 중·참의원 모두에서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날 즉각 반발했다. 시민단체 회원 등 5만5000명(주최 측 추산)은 도쿄에서 개헌 반대 집회를 열었다. 제1야당 민진당 렌호(蓮舫) 대표는 집회에서 “총리의, 총리에 의한, 총리를 위한 개악에 절대 반대한다”고 말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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