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독수리 5형제' 어디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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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은 그들을 '독수리 5형제'라 부른다. 독수리 5형제란 우주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지난 6월 말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의 정치실험을 평가한 데 따른 것이다. 그들은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개혁신당 창당의 기수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외로운 신세가 됐다.

개혁신당 창당론은 지난해 12월 대선이 끝난 직후 민주당 신주류에 의해 제기됐다. 신주류란 대선기간 내내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흘렀지만 신주류는 구주류에 발목잡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신주류 일부가 먼저 탈당해 민주당을 압박, 신당 창당의 동력을 만들겠다는 '선도탈당론'도 권노갑 변수에 묶여버렸다. 그 주축세력인 386의원들이 2000년 총선 때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상황이 독수리 5형제를 '정치 철새'란 비판에서는 자유롭게 만들었다.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탈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해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갈 길은 어딜까. 당장은 독자신당이다. 내년 총선에선 1인2표제(지지 후보와 지지 정당을 각각 기표하는 제도)가 도입될 수밖에 없다. 이부영 의원은 "영남에서의 2등은 민주당이 아니듯 호남에서의 2등도 한나라당이 아닐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영.호남에서 2등을 한다면 비례대표만 해도 최소 10석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1996년 15대 총선 때 '제2 꼬마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못한 곳이 많았는 데도 전국 득표율 12%였던 점도 이들에겐 위안이다. "당시엔 DJ세력이 빠져나간 수세적 상황이었지만, 정치개혁 프로그램을 내세운 공세적 신당이라면 적어도 15%(김부겸)~20%(김영춘)는 득표할 것"이란 계산도 하고 있다.

이들은 총선이 임박하면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 수도권 의원들이 동참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1천~2천표에서 당락이 갈라지는 수도권 선거에서 민주당과 신당으로 갈라지면 한나라당에 어부지리가 돌아간다. 이 경우 올 연말부터 내년 2월 사이 신당이 다시 모색될 수 있다. 연합공천의 여지도 없지 않다. 최근 민주당 신주류가 '민주당 해체 불가'등 '3불가론'을 외쳤을 때 '독수리 5형제'가 비판 목소리를 높이지 않은 이유다.

이들은 김원웅.유시민 의원의 개혁당에 대해선 "신당은 노무현당이어선 안된다. 당내에서 盧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을 수는 있다"는 수준의 타협선을 마련했다. 민주당에 대해선 "민주당 간판을 내리고 호남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정치에서의 타협 마지노선인 셈이다.

정치권에선 현재 구도로 내년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는 쪽은 거의 없다. 결과가 뻔하면 불리한 쪽이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지금의 일야다여(一野多與)구도가 내년엔 일야일여(一野一與)로 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4월 '독수리 5형제'의 실험이 실패로 드러난다면 시대를 잘못 읽은 대가다. 성공한다면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대국민 설득력과 정치력이 시운(時運)과 결합할지 지켜볼 대목이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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