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만난 인류의 미래, 수퍼 인간? 고릴라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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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발전하는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미래의 당신(The Future You)’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2017년 TED 2일 차인 25일(현지시각) 내로라하는 로봇·AI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이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일명 ‘로봇의 지배자들’ 세션에서다.

로봇·AI·미래학자들 TED 강연 #수퍼 인간 된다 #기억 잃어 소외되는 노인·환자 #AI가 모든 걸 알려줄 수 있어 #고릴라 신세 우려 #사람들에 자리 뺏긴 유인원처럼 #인간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어

이날 캐나다 밴쿠버 컨벤션센터 대극장.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대표 마크 라이버트가 로봇 ‘스폿(SpotMini)’에게 탄산음료를 달라고 하자 스폿은 캔을 정확히 집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라이버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거대한 애완견 같은 움직임에 청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라이버트는 “내가 스폿을 조정한 게 아니라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내 명령에 반응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동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본떠 만든 스폿 시리즈와 3세대 휴머노이드(인간을 닮은 로봇) ‘아틀라스’ 등을 제작한 회사다. 계단이나 비탈길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이동하는 로봇 영상으로 유명하다. 이 로봇들은 살아있는 동물의 유연한 움직임을 재현해 안정감이 뛰어나다.

25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7 TED 2일차 행사엔 로봇·인공지능 업계의 ‘고수’들이 모였다. 그 중 한 명인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마크 라이버트 대표가 네 발과 팔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스폿 미니’를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로봇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TED]

25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2017 TED 2일차 행사엔 로봇·인공지능 업계의 ‘고수’들이 모였다. 그 중 한 명인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마크 라이버트 대표가 네 발과 팔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스폿 미니’를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로봇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TED]

TED에선 로봇·AI와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이 갈렸다. 라이버트는 긍적적인 쪽이다. “인간은 곧 이런 로봇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며 “늦어도 우리 자녀 세대가 우리를 돌볼 때쯤이면 가정마다 스폿 같은 로봇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말대로 이 회사의 휴머노이드는 이미 컨베이어 벨트 작업에서 인간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작업한다. 45㎏ 상당의 짐도 가뿐히 든다. 로봇이 인간 일자리의 상당수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아마존은 드론 배달을 시도하지만,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말처럼 등짐을 지고 다니는 택배 로봇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배송업체인 UPS와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라이버트는 이 회사 로봇들이 군용으로 쓰이는지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피하면서도 “군사용이 꼭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로봇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TED에 영상으로 깜짝 등장해 “‘내’가 아닌 ‘우리’가 있을 때 혁명이 진행된다”며 “그 혁명은 온유한 혁명(revolution of tenderness)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TED]

프란치스코 교황이 25일 TED에 영상으로 깜짝등장해 “‘내’가 아닌 ‘우리’가 있을 때 혁명이 진행된다”며 “그 혁명은 온유한 혁명(revolution oftenderness)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TED]

애플의 AI 시리를 공동 개발한 톰 그루버도 한층 낙관적인 미래를 꿈꿨다. 그는 “AI가 인간의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그루버는 “만약 AI가 인간이 기억해야 할 것을 모두 알려줄 수 있다면, 기억을 잃어 사회에서 소외되는 노인이나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AI와 인간이 함께 할 때 수퍼 인간이 탄생한다”는 게 그루버 주장의 핵심이다.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쪽은 인간보다 높은 ‘지능’을 지닌 새로운 종(種)의 탄생을 반겨야 할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제시했다. 세계 여러 대학에서 AI 연구 기본서로 쓰이는 『AI : 현대적 접근』의 저자 스튜어트 러셀 미국 UC 버클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세돌 9단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러셀은 고릴라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들이 지능이 높은 종, 인간에게 빼앗긴 자리를 생각해 보자”며 “고릴라의 눈에서 존재론적 고민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고릴라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러셀은 당장 큰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 로봇 회의론자는 아니다. 다만 그는 “AI가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간과 공존 가능한 AI (Human-Compatible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밴쿠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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