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적자회사 팔고 새사업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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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매출액 1조원 안팎의 중견그룹들이 구조조정과 신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등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대그룹처럼 대규모 투자를 할 형편은 아니지만 새 사업을 찾지 않으면 뒤처지거나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다.

한일시멘트그룹은 인도네시아에 있는 철강 계열사인 한일자야㈜를 팔려고 내놨다. 한일자야의 연 매출은 4백억원. 이를 매각하면 그룹의 적자 사업을 모두 정리하게 된다.

부채가 없는 그룹으로 만든 뒤 기존 업체를 사들여 새 사업을 벌이자는 전략이다. 이 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8%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경영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받아 매물로 나온 기업의 인수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연내 새 사업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안에 지주회사로 경영 체제를 전환하는 이수그룹은 금융사업 진출을 모색 중이다. 올 초 대신생명의 인수전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이 그룹은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준성 명예회장의 자문을 받으며 금융업 진출에 대한 청사진을 새로 짜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달 말 어음할인 업체인 이수파이낸스를 청산했고, 이수화학의 윤활유 판매부문을 프랑스의 토탈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사업 구조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수그룹의 이석주 경영기획실 부장은 "배당을 할 수 없는 적자 계열사와 지주회사 출범 후 같이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지주회사도 수익 사업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진그룹은 지난달 말 주력업체인 ㈜일진과 일진전기㈜를 합쳤다. 전력과 통신케이블 사업부를 일원화한 것이다. 그룹의 모태 사업인 주물사업을 매각한 데 이어 알루미늄 창호 사업까지 정리했다.

최근엔 일진다이아몬드가 투자한 프로젝션 TV용 액정표시화면(LCD)사업에 그룹의 명운을 걸고 있다. 이 그룹의 허준규 회장은 매주 한번씩 건설 중인 평택 공장에 들러 LCD의 대량 생산 상황을 점검하고 수출 전략 마련을 독려하고 있다.

허 회장은 사장단회의에서 "지속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그룹의 성장 엔진 발굴에 힘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일진은 경영기획실이 나서 한계 사업의 정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 그룹의 한 관계자는 "중견그룹은 외형확대보다 수익 위주의 경영을 하지 않으면 생존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이밖에 대성그룹은 최근 설립한 벤처투자 업체인 바이넥스트하이테크를 통해 영화제작 사업에 나서는 등 에너지 일변도의 사업구조에 변화를 주고 있다.

신무림제지그룹은 경기가 불투명해지자 4천억원을 들여 짓기로 했던 제지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하고, 사무용품 유통 계열사인 오피스웨이를 발판으로 새 유통 사업을 찾고 있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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