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세먼지와 황사에 ‘마스크 공화국’ 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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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기영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 21일 열린 ‘미세먼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에서 “초미세먼지가 심한 날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쓰라고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대처 방안은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초미세먼지가 황사마스크에 의해 완벽하게 차단되지 못하고, 입자가 작아 실내로 침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장에서 착용하는 산업용 마스크가 그나마 효과적이라며 권고했다. 머지않아 방독면 얘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세먼지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미세먼지로부터 도피할 곳이 없다는 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마스크에 매달리는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경찰청은 신형 황사마스크 제품 4980개를 구입해 교통경찰관들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얼마 전 서울시를 비롯해 전국 교육청들은 미세먼지가 많은 날엔 야외 수업을 자제하고 학생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러다가 온 국민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마스크 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국민들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국가와 공무원에게 뭘 했는지 묻고 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는 석탄 화력발전소, 자동차 배기가스, 난방 연료, 공장 매연에다 고등어구이까지 다양하다. 중국발 미세먼지도 상당하다. 원인을 안다면 해결책을 제시하고 풀어 나가야 할 책무가 국가와 공무원에게 있다. 일시적이라지만 서울의 공기 질이 인도 뉴델리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악명 높은 중국 베이징보다 더 나쁘다는 소식은 치욕적이다. 지난 수년간 미세먼지 대책으로 쏟아부은 조(兆) 단위의 돈을 어디다 썼는지 엄중히 따져야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실 권리는 천부적인 생명권이다. 미세먼지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침묵의 살인자’로 불린다.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되살리려 해도 몸이 건강해야 할 것 아닌가. 미세먼지의 이름부터 ‘살인 먼지’로 바꿔야 한다. 국민이 허약하면 국가도 쇠퇴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국민은 애타게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