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자리 확대’ 구호만 넘치고, ‘근로환경 개선’ 가려운 곳은 놓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노동시장의 불합리성을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실질적인 일자리 확대보다는 이해집단의 표심을 노린 공약이 넘치고 있다. 일부 공약은 오히려 단기간에 일자리를 줄일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경제학회 공약 점검 ②고용·노동 #문, 근로시간 단축 … 보완책도 필요 #안, 직무형 정규직 … 구체성 아쉬워 #홍, 이중구조 개혁 … 양성평등 미흡 #유, 비정규직 총량 … 현장 반영 못해 #심, 청년 사회상속 … 고용 연결 안 돼

한국경제학회가 대선후보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한국경제학회와 중앙일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마련한 대선후보 경제공약 심층 분석 시리즈의 두 번째 주제는 고용·노동 분야다. 경제학회 평가팀은 고용·노동 공약을 분석했다.

공약을 분석한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공약을 분석한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대표 집필을 맡은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 방송국 신입 PD의 자살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노동을 바라보는 철학이 없어서 근로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일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른다”며 “근로 계약 자체도 무의미하지만 착취 수준인 근로환경에 대한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후보라면 일자리 창출 목표 수치뿐 아니라 현재 청년들이 어떤 근로환경에 처해 있으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혜안이 안 보여 아쉽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대선후보들의 고용·노동 공약에 대해 “전반적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유인하는 ‘규제 중심’ 공약이 너무 많다”며 “제조업과 관련해서는 한국 노동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핵심이고, 서비스업은 규제 완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핵심인데 그런 공약이 없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집권 후 공약들을 미래지향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주요 대선후보 5명의 공약에 대한 한국경제학회의 평가 및 분석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공공·분배 중시형 일자리 정책이다. 성장 촉진과 시장 활력 개선을 통한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공약도 제안도 부족하다.

공공 부문 중심의 81만 개 일자리 창출 공약 가운데 일부분은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 부문의 경직성과 방만경영, 특히 향후 공무원 연금 재정 적자의 급증과 같은 재정 문제를 감안할 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시·지속업무의 정규직화와 동일 기업 내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실현은 온당한 원칙과 방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공약들은 연공급이 아닌 직무 중심의 평가가 이뤄질 때만 가능한데 현행 취업규칙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급여는 낮추고 일자리는 늘리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확대 적용도 약속했다. 일반적으로 노조가 고용 창출을 위한 임금 삭감에 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삭감된 임금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자체령 등 구속력 있는 제도를 통한 보장이 필요하다. 각종 임금보조 공약은 자유무역협정(FTA)·세계무역기구(WTO) 등에서 ‘임금 덤핑’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자영업에 피해가 집중되므로 보완책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 기조의 유지는 괜찮지만 공약에서 구체적 금액을 공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육아휴직 강화의 전반적 방향은 좋지만 중소영세기업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

노동이사제와 노동회의소 공약은 지나치게 분배 중심이자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정책이다. 이보다는 중소기업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 대상의 업종별 협의 기능 강화가 선결 과제라 판단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청년 고용을 위한 ‘코리안 실리콘밸리’ 조성과 같은 고용친화적 첨단산업 공약은 의미 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5년간 10만 명의 전문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는데, 4차 산업혁명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방향은 제대로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의 국가주도형 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실현 가능한 수치인 것 같다.

직무형 정규직 도입 추진을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직무 분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문 후보와 마찬가지로 각종 임금보조 공약은 해외에서 임금 덤핑 시비를 불러올 수 있으며, 구체적인 최저임금액을 공약으로 공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임금직무혁신위원회 설치를 통한 국가자격제도 정비, 업무능력 중심 평가사회 구축 공약은 이전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정부의 제도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해 개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문 후보와 마찬가지로 육아휴직 강화라는 전반적인 방향은 좋지만 역시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공약을 담은 점은 다른 후보와 차별성을 가진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된 사항이나 현재 고용노동부의 기존 정책 방향을 상당 부분 공약에 담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다른 후보에 비해 육아휴직·양성평등에 대한 정책 공약이 부족하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일자리 정책과 노동보호 정책(근로자의 일·가정 양립, 건강 보호 등)이 혼재돼 있다. 육아휴직 확대, ‘칼퇴근법’은 근로기준 강화나 일·가정 양립 촉진 정책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비정규직 고용사유 제한, 비정규직 고용총량제 등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 공약보다도 더 진보적인 규제다. 현장 일자리 실태를 감안한 공약인지 의구심이 든다.

‘육아휴직 3년, 휴직수당 200만원’ 공약이 시행되면 아이가 셋인 경우 9년까지 연속 휴직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의 여성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내 하청에 대해 원청기업에 공동고용주 책임을 부여한다는 공약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원청기업이 하청기업에 간섭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공정시장경제 공약도 상당히 구체적이지만 규제 중심적이다. 전체적으로 시장중시 방향인 듯하지만 미시적으로는 규제가 집중적으로 포진하는 공약이 많다. 단기간에 실시할 경우 일자리를 파괴하는 공약들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공공 중시형, 분배 중시형 일자리 정책이라는 점에서 기본 방향은 전반적으로 문재인 후보와 유사하다.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은 성장과 시장의 활력을 개선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과 제안이 부족하다. 상속·증여세를 매년 20세가 되는 청년에게 배당한다는 청년사회상속제 공약이 일자리 창출이나 고용 확대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이걸 구현할 계획도 부족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