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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中 관영 환구시보 “美 북한 핵시설 타격시 군사개입 불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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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가 22일 “미국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정밀) 타격’에 대해 일단 외교적 수단으로 억제하겠지만, (중국의) 군사적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핵, 미국은 중국에 어느 정도의 희망을 바라야 하나’라는 제목의 사평(社平)을 통해서다. 또 “핵시설 이외의 공격 또는 한ㆍ미 군대가 38선을 넘어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다면 즉시 군사적 개입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평은 북한군 창건 85주년인 25일 6차 핵실험이 우려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사설 통해 “한ㆍ미가 38선 넘을 경우엔 자동개입” # 북 6차 핵실험 땐 대북 원유공급 축소 필요성 언급 # 추가 도발 우려한 중국의 대북 압박 더 강경해져 # 전문가 “중국 측이 北ㆍ美에 마지노선 제시한 것” #

외교가 소식통은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아닌 환구시보를 통해 나온 메시지이지만 중국이 그동안 환구시보를 외교적으로 활용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의미 있는 진전”이라며 “이 신문이 중국 당국의 정책 풍향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 방향성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제3함대 소속의 핵항공모함인 칼빈슨함.[중앙포토]

미국 제3함대 소속의 핵항공모함인 칼빈슨함.[중앙포토]

전문가들은 “환구시보가 베이징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또 북한과 미국을 향해 중국의 마지노선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몇 가지를 주요 포인트로 꼽았다. ^북핵 시설 타격 허용^대북 원유공급 축소 시사^38선 넘는 전면전 불허^무력에 의한 북한 정권 붕괴 불허 등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 정책 옵션 중 중국이 수용해야 할 것과 거부해야 할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ㆍ중이 지난 1961년 체결한 ‘조ㆍ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 대한 재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평화와 안전 수호를 전제로 어느 한쪽이 침략 받을 경우 자동개입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도록 돼있다.

지난 6일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지난 6일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그러나 환구시보는 이번 사평에서 북핵 개발이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의 정밀타격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북핵 불용 의지를 확실히 한 것이다. 또 ‘인도주의적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수준’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북 원유공급 감축을 시사한 것은 비평화적으로 사용되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평가다.

반면, 38선을 넘는 전면전을 허용하지 않은 것은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운 미군이 북한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 자칫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한반도 상황에서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김정은 체제 붕괴 시 북한에서의 힘의 공백이 남한 등에 의해 메워지는 것 역시 중국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이번 환구시보 제안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더라도 제한적인 형태라면 군사개입을 않겠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북한에 대한 어마어마한 압박”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이 중국의 이익에 반해 먼저 도발을 해 그런 일이 생길 경우 북ㆍ중 우호조약상 보호 대상이 아니고 중국이 지원할 의무가 없다는 점도 명백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주요 핵시설 [사진 중앙포토]

북한의 주요 핵시설 [사진 중앙포토]

윤경우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달 초 미ㆍ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대북 정책이 강경으로 한 스텝 더 나갔다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도 세컨더리 보이콧 등 트럼프의 중국 압박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핵 시설 타격은 상당한 보복을 불러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기에 어렵다는 것은 계산한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환구시보의 핵시설 공격 허용과 원유 공급 축소 문제는 북한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여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0일 언급한 중국의 ‘유례없는 협조’와 ‘매우 특이한 움직임’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 정부가 오는 26일 상원의원들에게 새로운 대북정책을 비공개로 브리핑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브리핑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포드 합참의장 등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짜는 최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며, 상원의원 보좌진들의 참석은 차단된다. 당초 브리핑 장소는 상원이었다가 갑자기 백악관으로 바뀌었다.

한ㆍ미ㆍ일 당국도 이번 주 잇따라 고위급 회담을 통해 중국 측의 새로운 정책 방향과 북한의 반응 등에 대한 평가를 공유할 예정이다. 25일엔 일본 도쿄에서 한ㆍ미ㆍ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이 열리고, 사흘 뒤 뉴욕에서 3국 외교 장관들이 만난다.

최익재ㆍ유지혜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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