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 땐 카메라 대신 레이더가 눈 역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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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20면

[SUNDAY MBA] 벤츠·BMW 자율주행차 직접 타보니 …

자동차의 자동주행 기술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도 앞차와의 간격과 차로에 맞춰 달릴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2020년에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도 없는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될 전망이다.

자동차의 자동주행 기술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도 앞차와의 간격과 차로에 맞춰 달릴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2020년에는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도 없는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이 도입될 전망이다.

지난 2월 11일 경기 화성의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2017 중앙일보 올해의 차’ 2차 심사를 치렀다. 이날 메르세데스-벤츠는 E400 4매틱으로 자율주행을 시연했다. E400 4매틱은 말 그대로 운전자의 조작 없이 스스로 달렸다. 최근 자율주행 자동차 관련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도 공상과학(SF)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자율주행 관련 기술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가령 최신 차종엔 자율주행의 조각을 이룰 기술이 빠르게 늘고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경보, 긴급제동, 조향보조 등이 대표적이다.

차로 따라 앞차와 거리 맞춰 진행 #운전대에 손 안 대고도 운행 가능 #벤츠·BMW·현대차 등 잇따라 출시 #2020년 차세대 자율주행차 나올 듯

합류 차로나 심한 굽이길선 이탈 가능성

올해의 차 심사 이후 한 달 만에 메르세데스-벤츠 E400 4매틱을 다시 만났다. 시승코스는 서울 테두리를 따라 도는 외곽순환고속도로. E400 4매틱의 자율주행 모드 쓰는 법은 아주 쉽다. 운전대 왼쪽의 작은 레버로 정속주행장치를 켠 뒤 상한 속도와 앞차와의 간격만 정하면 된다. 그러면 계기판 속 손톱만한 운전대 아이콘이 녹색으로 영롱히 빛난다. 운전자가 주도권을 자동차로 넘겼다는 신호다.

동서울 톨게이트를 구리 방향으로 빠져 나온 뒤 자율주행 모드로 달리기 시작했다. E400 4매틱은 차선을 따라 운전대를 조심스럽게 꺾었다. 속도에 따라 좇는 기준은 다르다. 시속 0~60㎞에선 앞차, 시속 60~130㎞에선 앞차와 차선, 시속 130~210㎞에선 차선을 감지해 방향을 가늠한다. E400 4매틱은 앞차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가속과 감속을 반복했다. 30초 이내의 정차 땐 가속 페달을 다시 건드리지 않아도 앞차를 따라 재출발한다. 한강 건너 구리남양주 톨게이트까지 E400 4매틱은 알아서 달렸다. 방향지시등을 2초 이상 켜면 옆 공간을 확인한 뒤 차선을 바꾼다. 그리고 미리 설정해 놓은 속도까지 가속해 추월한다.

E400 4매틱의 주행보조 기술을 쓰려면 조건이 있다. 1분에 한 번씩 계기판에 경고그림이 뜰 때마다 운전대의 터치스위치를 건드려야 한다. 경고음 낼 때까진 실질적으로 90초 이상 자율주행을 유지한다. 이후에도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E400 4매틱은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줄여 멈춰 선다. 당뇨 쇼크나 심장마비 같은 상황에도 대응 가능한 셈이다.

카메라와 레이더 등을 활용한 벤츠의 자율주행시스템.

카메라와 레이더 등을 활용한 벤츠의 자율주행시스템.

지난달엔 BMW 530i x드라이브로 서울과 일산을 잇는 자유로의 구간단속구간을 자율주행으로 달렸다. 530i x드라이브 역시 스스로 운전대와 페달을 조작하며 능숙하게 주행했다. 정보창에 경고등 뜰 때마다 운전대만 슬쩍 건드려주면 그만이다. 자율주행은 예상보다 정교하고 편안했다. 벤츠와 BMW 모두 차선과 교통흐름에 따라 매끈한 궤적을 그리며 주행했다. 물론 아직 넋 놓고 쓸 단계는 아니다. 안전을 위해 보수적으로 세팅하다 보니 무례한 끼어들기를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 또한, 톨게이트 직전처럼 길이 합쳐지는 지점에선 차선을 놓쳤다. 심한 굽잇길에선 슬그머니 차선을 넘어 갓길을 밟기도 했다. 그러나 정체구간이나 정속으로 달릴 땐 지금 당장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운전 스트레스를 확실히 줄여 준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기술수준에 따라 L0~L4의 다섯 단계로 나눈다. L0은 자동화 기술 없는 기존 자동차다. L1은 ‘단독기능 자동화’. 앞 차와의 간격을 지키며 정속 주행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선이탈 경보장치 등이 좋은 예다. L2는 ‘통합기능 자동화’다. 최소 2개 이상의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갖춘 차를 말한다. L3은 조건부 자율주행이다. ‘2017 서울모터쇼’에 네이버와 서울대가 출품한 자율주행자동차가 여기에 속한다. L2가 손을 뗄 수 있다면, L3은 운전자가 전방을 주시할 필요도 없다. 반면 긴급한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개입해야 한다. 마지막 L4는 완전 자율주행. 운전할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구글이 선보인 자율주행차처럼 운전대와 페달조차 필요 없다. L2는 기술 단계 중 가장 스펙트럼이 넓다. 따라서 같은 레벨로 묶은 차종도 제조사마다 기술 격차가 꽤 크다. 또한, 연구실 속 프로토타입이 아닌 양산차에 얹어 기술을 갈고 닦는 중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유지, 긴급제동 등의 주행보조 기술을 유기적으로 엮은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 BMW 5시리즈, 제네시스 EQ900 등이 L2에 해당한다.

사고 위험 때 탑승자 보호기능도 갖춰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그렇다면 이 차들은 어떻게 준자율주행 혹은 반자율주행을 할 수 있을까? 사람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상황파악-판단-행동’의 패턴을 따른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빠르게 발전 중인 단계는 각종 정보를 조합하는 상황파악이다. 사람의 눈을 대신할 장치가 바로 센서다. 주행보조 기술이 L2로 접어들면서 용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센서를 아낌없이 쓰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400 4매틱가 좋은 예다. 앞 유리 룸미러 안쪽에 다목적 스테레오 카메라를 숨겼다. 두 개의 카메라는 전방상황을 50도의 범위로 최대 500m까지 파악한다. 90m까지는 두 가지 영상을 조합해 앞쪽의 지형지물과 이동물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3D(입체)로 감지한다. 앞서 달리거나 좌우 양옆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와 보행자까지 인식할 수 있다. 벤츠 E400 4매틱이 차선을 따라 운전대를 꺾으며 달릴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카메라는 악천후 등 시야에 제약이 많을 땐 제 힘을 못 쓴다. 그 빈틈은 레이더로 메운다. E400 4매틱은 앞뒤 범퍼 좌우에 30~140도의 범위로 40~80m까지 파악하는 멀티 모드 레이더를 달았다. 앞쪽엔 90도  범위로 70m까지 파악하는 장거리 레이더를 더했다. 레이더는 ‘무선탐지와 거리측정(RAdio Detecting And Ranging)’의 약어다. 마이크로파(극초단파)의 전자파를 물체에 쏜 뒤 반사되는 정보를 수신해 거리와 방향, 고도 등을 탐지하는 무선 감시 장치다. 멀티 모드와 장거리 레이더는 E400 4매틱이 주변 자동차를 감시하며 교통흐름에 맞춰 자율주행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장비다. 아울러 E400 4매틱 앞뒤 범퍼 좌우엔 1.5~4.5m의 물체를 인식하는 초음파 센서를 달았다. 초음파는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없는 20㎑ 이상의 주파수를 말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물체가 있는지, 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파악하는 데 요긴하다. E400 4매틱의 초음파 센서는 주차 보조나 차체 옆쪽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알아채고 대비할 때 쓴다. E400 4매틱은 총 3개의 레이더와 2개의 카메라, 4개의 초음파 센서로 무장한 셈이다.

통합 제어 시스템은 이들 센서가 보낸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해 판단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가령 차체 앞쪽의 레이더가 위험을 감지하면 실제 충돌이 일어날 시간을 계산한 뒤 정확히 15만 분의 1초 전 앞좌석 시트벨트를 바짝 당겨 죈다. 측면 충돌을 예상하면 남은 시간을 계산한 뒤 0.8초 전 해당 방향 시트 옆구리 속 공기 주머니를 부풀린다. 그 결과 승객을 충격이 예상되는 도어로부터 실내 안쪽으로 5㎝ 밀어 넣을 수 있다. 그 정도로 도움이 될까 싶은데 벤츠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5㎝ 차이의 기적’을 확신한다.

충돌 0.2초 전엔 실내 스피커로 80㏈의 고주파음을 튼다. 바로 옆에서 굴착기가 작업할 때 나는 소음 수준이다. 자동차가 충돌하면 엄청난 소리 때문에 청각이 심하게 손상될 수 있다. 그런데 충격 직전 이 고주파음을 들으면 사람의 귀는 귓속 등골근육을 위축시킨다. 더 큰 소리가 들어오기 전에 미리 문을 닫는 셈이다.
자율주행기술은 빠르게 현실로 거듭나는 중이다. 운전자의 피로를 덜고 실수를 줄이기 위한 기술이 진화하면서 이미 제한적이나마 스스로 달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카메라 및 레이더 센서와 정보처리 기술의 진화, 전동화 기술이 이 같은 흐름에 가속을 붙였다. 자동차 업계는 2020년께 L3 수준의 양산차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김기범 객원기자
로드테스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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