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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치과비도 부담돼, 남은 아랫니 2개뿐” … 아파도 참는 장애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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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9일 오전 9시 서울 성동구의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2층 진료실. 지적장애 3급 장애인 박모(64·서울 노원구)씨가 진료용 의자(유닛체어)에 앉았다. 남선회 진료부장이 박씨의 치아를 확인하고 신경치료를 했다. 박씨는 아랫니가 두 개밖에 없다. 지난달 앞니 5개, 어금니 1개를 뺐다. 뿌리에 치주염이 심한데도 진료비 부담에다 장애인을 진료해 주는 치과를 찾지 못해 이런 상태까지 왔다. 남 부장은 “장애인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치과 진료를 미루다 병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난해 우리 병원을 찾은 장애인은 7000여 명으로 이는 서울시 등록 장애인의 1.8%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늘 37회 장애인의 날 … 그들은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1억 들기도 #전문가들 “소득 적어 진료 덜 받고 #병 커지면 일 못해 소득 감소 악순환 #의료비 본인부담 경감제 확대해야”

20일은 제37회 장애인의 날이다. 정부가 그간 장애수당 등을 만들어 복지 투자를 늘리긴 했지만, 장애인의 건강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충북대 의대 박종혁(예방의학) 교수의 ‘중증 장애인 의료보장 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의료비가 소득의 20% 이상 차지)에 시달리는 장애인 가구는 21.7%로 비장애인(10.4%)의 2.1배에 달한다. 의료비가 가구소득의 40%가 넘는 경우도 장애인이 8.9%로 비장애인(3.3%)의 2.7배다. 또 건강보험공단 진료 데이터에 따르면 우울증 유병률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2.4배, 고혈압은 1.4배, 당뇨병은 1.2배, 치매는 2.4배, 허혈성 뇌졸중은 2.8배, 충치는 4.3배, 골절은 1.5배 각각 높았다.

박 교수는 “장애인 가구의 소득이 비장애인보다 적어 진료를 덜 받고, 병이 커지고, 일을 더 못하게 되고, 소득이 줄게 돼 다시 병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적장애 2급 아들(25)을 둔 어머니는 “아이의 발달이 늦어 전국을 돌며 애한테 좋다는 치료는 다 했다”고 말했다. 1억원이 넘게 들었다고 한다. 시각장애 1급 여성(39)도 “시력을 잃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20대에도 병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쳤고 재활 치료를 포기했다”며 “그동안 1억원가량 의료비를 썼다”고 말했다. 1급 뇌병변장애인 남성(47)의 경우 아버지(작고)가 막노동을 해서 번 돈의 절반을 근골격·관절 치료, 통증 치료에 썼다. 학습도구 비용, 관절수술·경추수술 등 2차 장애 보장용구에도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는 “항상 통증이 있고 정말 참기 어려울 때만 병원에 가는데 치료비·교통비에 1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의료기관 접근성도 낮았다. 박 교수팀이 서울 종로구 16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주 출입구에서 진료실까지 장애인의 접근성을 조사해보니 문제가 없는 곳은 13개(8.1%)에 불과했다. 주 출입구에 문턱이 높거나 휠체어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데가 가장 많았다. 또 스마일재단 조사에 따르면 전국 1만7000여 개의 치과병의원 가운데 장애인을 진료할 수 있는 곳은 3%(441개)였다. 박 교수는 “장애인에 대한 의료비 본인부담 경감제를 소아에서 성인으로 확대하고, 장애인 활동 지원 제도도 강화하되 이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증장애 재활 치료 바우처(이용권) 한도액 상향 조정 ▶의료기관에 전문수화통역사 배치 ▶지역사회 내에 재활전문병의원 구축 등을 제안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박정렬 기자 ssshin@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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