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파이캠 무장하고 잠복수사 … 미세먼지 잡는 서울시 007 작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이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재건축 철거현장에서 미세먼지 발생 상황을 적발하기 위해 가림막 구멍으로 현장을 살피고 있다. 공사장 비산 먼지는 수도권 미세먼지의 22%를 차지한다. [김상선 기자]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이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재건축 철거현장에서 미세먼지 발생 상황을 적발하기 위해가림막 구멍으로 현장을 살피고 있다. 공사장 비산 먼지는 수도권 미세먼지의 22%를 차지한다. [김상선 기자]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축물 철거 공사장. 포클레인이 요란하게 건물 잔해를 헤집고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는 공사 현장에 중년 남성 4명이 들이닥쳤다. 앞을 가로막는 공사장 관계자에게 이들은 신분증을 보여주고 곧장 건설 폐기물을 트럭에 옮겨 싣는 곳으로 향했다. 작업 중인 트럭 주변은 뿌연 먼지가 가득했다. 살수 장치가 있었지만 물을 뿌리지 않고 있었다.

사법권 지닌 환경 단속 공무원들 #먼지 많은 공사장 560곳 집중 점검 #주민으로 위장해 3~4일 증거 수집 #‘수상한 사람’ 경찰에 신고 당하기도

일행 중 한 명은 먼지가 날리는 모습을 재빠르게 카메라에 담았다. 방진 덮개를 덮지 않은 5000t가량의 건설 폐기물 더미도 발견됐다. 토사를 손으로 만져본 다른 남성은 “흙이 바짝 말라 있고 주변에 덤프트럭 바퀴 자국이 없다”며 공사현장 관계자에게 “폐기물을 얼마 동안 방치한 것이냐”고 추궁했다. 이 관계자는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다른 공사현장 관계자에게서 “3일 동안 쌓아뒀다”는 말이 나왔다. 현장소장은 “(건설 폐기물을) 보관한 지 하루밖에 안 됐다”고 잡아뗐지만 이미 현장검증과 진술을 확보했다고 하자 소장도 한 발 물러섰다.

이날 약 4만8000㎡의 공사현장을 뛰어다닌 이들은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 환경보전수사팀 수사관들이다. 최연장자인 고광선(59) 수사관을 비롯해 이요한(53)·김기성(46)·이진욱(40) 수사관이 한 팀으로 움직였다. 네 시간에 걸친 수사 끝에 이 공사장은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형사입건 조치됐다.

이 환경보전수사팀은 서울시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운영하는 ‘수사팀’이다. 서울시는 노후 경유차 단속이나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비산(飛散) 먼지 예방을 위해 특별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사경은 일반 경찰의 수사권이 미치기 어려운 철도나 환경·세무 등 업무에 대한 단속 권한을 위임받아 활동하는 일반직 공무원이다.

특사경이 미세먼지 잡기에 대대적으로 나선 건 지난해 말부터다. 대기환경보전법이 정한 대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방진 덮개를 규정대로 사용하지 않고 공사장 물 뿌리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공사현장 등이 단속 대상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 2월까지 공사장 560곳을 점검해 29곳을 형사입건하고, 23곳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다음달 말까지 서울시내 대형 공사장(1만㎡ 이상) 479곳을 점검할 계획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공사장 비산 먼지는 국내에서 발생한 수도권 미세먼지의 22%(지난해 기준)를 차지한다. 자동차(국내 발생 미세먼지의 25%)와 비슷한 수준이다.

특사경이 위법 공사장을 적발하는 방식은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잠복수사’는 기본이다. 공사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계단이나 상가 옥상 등 영화 속 스나이퍼(저격수)들이 저격을 위해 자리할 만한 곳이 명당이다. 수사관들은 이런 곳에서 3~4일 잠복하며 공사장을 관찰하면서 증거 동영상과 사진을 확보한다. 또 잠복수사 중 위법 사항이 적발된 공사장을 불시에 방문해 미리 확보한 증거를 재확인한다. 김기성 수사관은 “오늘 단속한 공사장도 4일에 걸친 잠복을 통해 확보한 증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언더커버(위장)’ 방식의 수사도 한다. 사복을 입은 수사관이 주민인 척 공사장에 잠입하는 식이다. 이때는 첩보 영화에나 나올법한 초소형 캠코더인 ‘스파이캠’을 활용한다. 수사관들이 소지한 안경이나 자동차 열쇠, 모자에 숨겨져 있는 카메라로 증거를 몰래 촬영한다. 위장 수사 땐 연기력도 필요하다. 고광선 수사관은 “전화를 받거나 소지품을 꺼내는 등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특사경 수사관 16명은 4인 1조로 나누어 하루에 공사장 4~8곳씩을 이런 식으로 수사한다.

신분을 감추고 일하려다 보니 공사장 측에서 되레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공사장 관계자들과 언쟁을 벌이는 일은 다반사다. 황오주(58) 환경보전수사팀장은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으로 벌금을 내면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공사 수주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단속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 기간에만 반짝 법을 지키는 공사장들이 없도록 단속 방법을 계속 다양화할 것”이라고 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