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이번엔 백기사 등장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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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균 KT&G 대표이사는 9일 긴급 기업설명회를 열고 "인삼공사 상장과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라는 칼 아이칸 측의 요구를 거절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뉴스]

KT&G를 둘러싼 인수합병(M&A)이 점입가경이다. 세계적인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에 이어 M&A 업계의 거물인 김병주씨의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도 등장했다. 토종 사모펀드인 보고펀드 측은 외국계 펀드의 공동 인수 제의를 받았지만 거부했다고 밝혔다.

펀드들의 사냥감으로 전락한 KT&G는 9일 긴급 기업설명회를 열고 "아이칸의 요구는 무리하다"며 "우호 지분이 많아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M&A 기대감에 이날 KT&G 주가는 3% 넘게 올랐다.

◆ 안개 속에 가려진 경영권=아이칸은 이달 초 "지분 6.59%를 확보했다"며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KT&G의 자회사인 인삼공사를 상장시키고 부동산을 처분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스스로 고른 외국인 3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본지 2월 7일자 E2면, 2월 8일자 E6면>

아이칸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날 칼라일그룹 아시아 회장을 지낸 김병주씨의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경영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고 보도했다. MBK가 KT&G와 손을 잡고 '경영자 인수(MBO)' 방식으로 아이칸의 공세를 막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MBO는 대표적인 M&A 방어책의 하나로 경영진이 외부에서 돈을 조달해 소액주주 등의 주식을 공개 매수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KT&G는 "MBK 측과 논의한 적이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한편 보고펀드도 몇 달 전에 외국 헤지펀드로부터 KT&G를 함께 인수하는 방안을 제안받았으나 설립 취지와 맞지 않아 거절했다고 이날 밝혔다.

◆ 묘수 없는 KT&G=아이칸이 기세를 몰아 1대주주인 프랭클린뮤추얼어드바이저스(지분율 7.1%)와 손잡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의 지분율로는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양측이 제휴하면 지분율이 13.8%로 뛰면서 기업은행.우리사주조합 등 KT&G의 우호적 지분(총 11.6%)을 넘어선다. 경영권 위협이 발등의 불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한 묘책이 없다는 게 KT&G의 고민이다. 그래서 우호지분 확보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KT&G 곽영균 사장은 "지금은 우호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식을 오래 보유한 프랭클린은 현재 경영에 만족한다"며 아이칸과의 연대 가능성을 애써 부인했다.

MBO 방식도 쉽지 않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는 "KT&G는 최대주주 지분이 적어 소액주주의 피해가 불가피해 사실상 상장 폐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 주인 없는 회사가 표적=KT&G는 담배사업권과 1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부동산을 가진 알짜배기 회사다. 그러나 민영화로 지분이 분산되면서 뚜렷한 주인이 없다. 아이칸의 사냥감이 된 이유다. 이처럼 외국인 지분율이 높으면서 국내엔 지배주주가 없지만, 수익을 많이 내는 회사는 많다. 대우증권 성낙규 연구원은 "시가총액 10위에 드는 POSCO와 KT도 국내 최대주주는 각각 SK텔레콤(2.8%)과 국민연금(3.6%)이지만, 외국인 지분율이 각각 68%와 47%에 달해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KT&G는 주주 중심 경영을 잘해 와 적대적 M&A가 성공할 가능성은 작다"며 "2003년 SK㈜가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르다"고 말했다.

KT&G의 상징성을 감안해 정부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이날 "적대적 M&A에 대해 공격과 방어가 균형이 이뤄지도록 KT&G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보완 규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준술.손해용 기자

*** 경영권 위협받는 KT&G

- 1월 18일 : 칼 아이칸의 대리인이 주주 자격으로 KT&G 측과 접촉해 유휴 부동산 매각, 한국인삼공사 상장 등 요구

- 2월 3일 : 아이칸파트너스 '경영 참여 목적으로 KT&G 지분 6.59% 확보' 공시

- 6일 : 아이칸파트너스, 워런 리히텐슈타인 등 외국인 3명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

- 9일 :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경영자 인수(MBO) 방식으로 KT&G 인수 추진' 보도

- 9일 : 곽영균 KT&G 사장, 긴급 기업설명회 열고 MBK파트너스의 인수설 부인, 아이칸 측 요구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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