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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데오거리가 살아난 두 가지 이유, SNS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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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동네? 맛집 거리다. 서울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성수동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형이나 역사, 상권 등 모든 게 다 다르지만 가볼만한 카페와 레스토랑으로 채워진 맛 골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집저집 슬렁슬렁 걸어다니며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틈틈이 디저트 즐기는 게 가능한 동네라는 얘기다. 이런 도심 핫플레이스를 알차게 즐길 수 있는 가이드 역할을 할 '푸드트립'을 시작한다. 첫 회는 '다 죽었다 살아난' 압구정 로데오거리다.

상권 살리려 건물주 스스로 임대료 낮춰 #젊은 셰프 진입장벽 낮아져 맛집거리로 거듭나 #골목에 숨어있어도 SNS 보고 찾아와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맛집이 속속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로데오거리 아우어 다이닝 앞. 김성룡 기자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맛집이 속속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로데오거리 아우어 다이닝 앞. 김성룡 기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에서 학동 사거리 입구까지 이어지는 'ㄱ'자 형태의 압구정 로데오거리(이하 로데오거리)는 1990년대에 돈 많고 잘 노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오렌지족(族)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하지만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치솟은 임대료 탓에 개성있는 맛집 등이 시내버스 세 정거장 거리의 신사동 가로수길로 옮겨가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거리 자체가 죽기 시작했다. 가게가 떠나고 손님이 줄고,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빈 가게가 속속 생겨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로데오거리의 시대는 끝난듯 했다. 그렇게 잊혀져 가던 로데오거리가 최근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2012년말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이 개통한 것도 일조했지만 그보다는 특별한 맛집 덕분이다. 지난해(2016년)에만 연희동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몽고네를 시작으로 백곰막걸리&양조장, 더그린테이블, 아우어베이커리, 아우어다이닝, 스파크 등이 로데오거리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프렌치·이탈리안 같은 서양식 레스토랑부터 빵집, 전통술 전문점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침체된 상권 되살리는 골목 맛집  

다 죽었던 동네에 왜 갑자기 이름난 맛집이 몰리기 시작한 것일까. 여기엔 임대료의 역설이 있다. 상권 침체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권리금과 임대료가 확 꺾이며 진입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의류회사가 있던 지하1층, 지상2층 건물에 전통주 전문점 백곰막걸리&양조장을 연 이승훈 대표는 "권리금이 없는 데다 월세도 합리적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압구정로데오역 개통으로 반짝 상승효과가 있던 건물 권리금과 임대료는 이후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경기 침체로 다시 하향세다. 로데오거리에 있는 삼성부동산 관계자는 "올해는 특정 지역을 빼고 권리금은 거의 없어졌고 임대료도 지난해에 비해 10~20% 정도 낮아졌다"며 "상권을 살리기 위해 건물주들이 나서서 임대료를 낮추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1층이나 교차로 주변을 제외하면 권리금이 없는 가게가 상당수 있다. 그러면서도 미쉐린(미슐랭) 스타 셰프의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이 밀집해 있는 청담동과 가까워 미식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유입이 가능하다. 레스토랑 가이드『블루리본』김은조 편집장은 "강남 한복판이지만 다른 상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해 젊은 셰프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루이쌍끄·스파크·더그린테이블·톡톡 등은 프랑스·미국·일본 등에서 경험을 쌓은 젊은 셰프들의 공간이다.

속속 모여드는 수준급 셰프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그린테이블.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 눈에 잘 안띄는 2층에 맛집에 숨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 덕분에 이렇게 숨어있어도 손님들은 기어이 알고 찾아온다. [사진 더그린테이블]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있는 그린테이블. 주택가의 한적한 골목, 눈에 잘 안띄는 2층에 맛집에 숨어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 덕분에 이렇게 숨어있어도 손님들은 기어이 알고 찾아온다. [사진 더그린테이블]

'시안'이나 '궁' 등 1990년대 청담동 르네상스 시절 레스토랑은 외관부터 남달랐다. 하지만 로데오거리 레스토랑은 소박하다. 1층에 있는 경우도 드물고 멋없는 네모난 건물 2~3층에 있는 곳이 더 많다. 주차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아예 차를 갖고 들어서기 어려울만큼 골목이 좁다. 오래된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은 모양이 다들 비슷해 2~3번 간 곳도 갈 때마다 헤매기 일쑤다. 게다가 간판도 작아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무슨 음식인지 파악하기는커녕 이곳이 식당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전이 숨어있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해외파 셰프들의 수준급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임대료가 싸다지만 이런 곳에 인정받는 젊은 셰프들이 갑자기 몰려드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7년째 이 지역을 지키고 있는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 이유석 오너셰프는 "로데오거리에선 뻔한 컨셉트나 음식은 외면받는다"며 "셰프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컨셉트를 맘껏 실험하고 평가받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프렌치 레스토랑 '톡톡'만 봐도 그렇다. 프렌치라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요즘은 반건조한 생선을 준비중이다. 김대천 오너셰프는 "겨울에 삼천포·여수의 지인에게 부탁해 자연산 생선 600㎏을 구입해 건조했다"고 말했다. 굽거나 찌지 않고 날로 즐기는 생선은 활어 아니면 선어라고만 아는 사람들에게 보다 탱탱한 식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톡톡' 골목 안쪽 1층엔 2016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파크'가 문을 열었다. 싱가포르·이탈리아에서 경험을 쌓은 박성우 오너셰프가 해산물 요리 등 남부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인다. 선릉로쪽으로 한 블록 옆에는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 '더그린테이블'이 있다. 도산공원 옆쪽 블럭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가장 핫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2곳이 있다. 하나는 '볼피노'. 해방촌길에서 이탈리안 선술집 컨셉트의 '쿠촐로'로 이름을 알린 김지운 오너셰프가 연 세번째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쫄깃한 생면으로 만든 오징어먹물펜네, 건면에 성게알을 올린 스파게티니 등이 인기다. 건너편 블록엔 하얀색 외벽이 시선을 사로잡는 퓨전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우어다이닝'이 있다.

품격있는 디저트와 내공 가득한 분식집
로데오거리의 오전은 강남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인적이 드물다. 하지만 CGV씨네시티 뒷 골목은 다르다. 오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투명한 유리창에 빵 나오는 시간이 적힌 '아우어베이커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페스트리 위에 생초콜릿과 카카오 파우더를 듬뿍 뿌린 대표 빵 '더티 초코'에 커피를 곁들이는 게 요즘 인스타그램 트렌드. 아우어베이커리에서 나와 선릉로 쪽으로 두 블록 정도 더 가면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 1층에 하얀 글씨로 'D'라고 적힌 곳이 보인다. 디저트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디저트리'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디저트를 만들어준다. 오후 2시부터 11시까지 운영하니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에 가기 좋다. 디저트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른 곳보다 안쪽으로 들어간 가게가 눈에 띄는데 매콤한 떡볶이를 파는 '루비떡볶이'다. 떡볶이에 새우튀김을 얹어준다.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여는데 오후 4시30분부터 5시까지는 쉬니 이때를 피해야 한다.

셰프 요리와 술을 즐길 수 있는 심야식당  

로데오거리에는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심야식당이  있다. 사진은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에서 이유석(왼쪽) 오너셰프가 단골 고객괴 이야기하는 모습. [중앙포토]

로데오거리에는 술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심야식당이 있다. 사진은 프렌치 개스트로펍 루이쌍끄에서 이유석(왼쪽) 오너셰프가 단골 고객괴 이야기하는 모습. [중앙포토]

로데오거리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심야식당 불이 켜진다. 오후 8~9시가 넘으면 인근 신사·청담동에서 식사를 마치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 심야식당들은 오후 6시쯤 문을 열어 자정 넘은 시간까지 운영하기에, 2차 하러 오는 고객이나 청담동 등 인근 레스토랑 셰프들이 단골이다. 일식·프렌치·한식 등 요리 종류도 다양하다. 신사현대아파트 건너편 건물 2층 '루이쌍끄'는 로데오 맛집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엘레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픈 키친에서 요리하는 셰프와 이야기를 나누며 프렌치·스패니쉬 단품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루이쌍끄와 같은 블록엔 커다란 창으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하얀색 2층 건물이 있는데 2016년 문을 연 백곰막걸리&양조장이다. 210여종의 전통주를 구비한 최대 규모의 전통주 전문점이지만 지하 1층에선 국산 크래프트(수제) 맥주도 판다. 톡톡 골목엔 특히 맛집이 많다. 스파크 2층에 있는 일본 갓포요리 전문점 '이치에'도 그 중 하나다.
오늘은 초코 빵에서 시작해 갓포요리로 끝나는 푸드 트립을 떠나보면 어떨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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