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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할 만큼 했다…손실률 낮추려면 동의 불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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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까지 진통이다. 큰 틀에서 진전된 ‘상호 합의점’을 찾았지만,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재조정안에 대한 최종 결론을 14일 오후 7시 현재 내리지 못했다. 익명을 요청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14일 “연금 가입자의 손실 최소화를 위해 막판까지 (국민연금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당초 오늘 예정됐던 투자위원회가 15일로 미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은 “이해관계자 고통 분담” #국민연금 “대주주 책임” 입장차 #채무재조정 동의가 그나마 손실률↓ #채권 상환 ‘보증’ 놓고 막판 진통

 최종 결론은 내지 못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결국 '수용'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면 국민연금이 할 만큼은 했다고 인정할 만하다”며 “산은에서 최대한 받아내기 위한 협상의 과정이었을 뿐 국민연금도 자율적인 채무재조정이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 초단기 법정관리)보다 손실률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원칙을 앞세운 산업은행과 ‘대주주로서의 경영 실패 책임 이행과 연금 가입자의 손실 최소화’ 주장을 앞세운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대우조선 구조조정방안이 발표된 이후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국민연금 등과 같은 회사채 투자자도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산은의 입장과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FI)로 회사채를 샀을 뿐인 투자자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떠안을 수는 없다”는 국민연금의 입장이 맞섰다.


산은은 앞서 4조2000억원의 자금 수혈 때 시중은행을 비롯한 다른 채권단은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대우조선이 지금까지 버텨온 데 따른 이익만 챙겨갔다는 ‘피해 의식’이 있다. 이번만큼은 ‘세금’을 들여 채권단이나 사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앞서 산은은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 여파로 지난해 3조641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함께 지원에 나섰던 수출입은행은 1조48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립 40년 만에 처음이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구조조정이 암초에 부딪힌 것은 국민연금의 최근 사정 때문이다. 과거 같았으면 ‘대우조선 같은 회사가 망하면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대의(大義)에 국민연금은 당연히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그러나 정권의 압력을 받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는,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여론이 악화하면서 의무 가입 폐지 등과 같은 ‘국민연금 해체론’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이 마당에 정부의 구조조정안에 쉽게 찬성해 줬다가는 ‘부실 기업에 2000만 국민의 노후 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에 휩싸일 게 뻔하다. 최악의 경우엔 의사 결정권자들의 ‘배임’ 혐의까지 배제할 수 없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하면 2682억원의 평가손실을, 거부해서 초단기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에 돌입해도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입는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에 그나마 균열 조짐을 보인 건 13일 오후 양 기관의 수장인 이동걸 산은 회장과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만나면서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안 발표 이후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어느 쪽을 택하든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끝장’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은 최대한 얻어내겠다는 전략이다. 국민연금이 요구하는 것은 3년 만기 연장하는 회사채 50%에 대한 상환 ‘보증’에 준하는 무언가다. 산은이 제시하는 에스크로 계좌나 이행확약서 등으로는 부족하다. 산은은 앞서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할 때 “더 이상 지원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2년도 채 안 돼 2조9000억원의 신규 지원안을 꺼냈다. 산은이 대우조선의 회생을 강조해도 3년 뒤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국민연금의 판단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단기적인 연금 기금의 손실뿐 아니라 국가 경제 발전을 통한 향후 연금 기금의 증대 방향까지 고민해야 하는 게 국민연금의 책무”라며 “단기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국가 경제에 이로운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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