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에게 쏘세요" 로맨틱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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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조선호텔 커플용 방안을 직원들이 풍선·꽃·초코렛 등으로 꾸미고 있다.
사진=신인섭 기자

#1. 백화점에 근무하는 하모(31) 대리는 지난 연말 소득공제 서류 준비를 위해 한 백화점 카드의 소비 내역서를 받아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한해 지출이 6백여만원인데 그 중 자신을 위해 쓴 건 45만원짜리 정장 한벌을 포함해 60만원 남짓이었다. 수백만원은 여자친구 생일에 선사한 110만원짜리 긴 코트 같은'작업용'지출이었다.

#2. 서울 K대 2년생 한모(26)씨는 겨울방학 동안 한 기업의 인턴일을 하면서 주말엔 과외공부를 가르친다. 고된'투잡'을 하는 이유는 며칠 남지 않은 여자친구와의 '만남 100일 기념식' 비용 때문이란다. 면세점에서 봐 둔 명품 핸드백을 사줄 생각이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남성들이 소비시장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통업계에선 자신을 위한 구매에 인색한 연령으로 '찍힌'지 오래지만 이성친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성향이 주목받는 것이다. '로맨틱 마케팅'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상혼의 최선봉은 호텔업계다. 14일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호텔업계는 30만~40만원대의 1박2일 숙박 패키지를 줄줄이 내놨다. 풍선.꽃 등으로 꾸민방에 화장품 선물세트와 고급 와인을 비치해 연인 손님들을 겨냥했다.

일반 가족용 패키지가 20만~30만원임을 고려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이용객이 해마다 늘고 있다. 서울 조선호텔의 경우 연인용 패키지숙박권이 2004년 120건 정도 팔린 게 지난해 200건으로 67% 급증했다. 올해도 이런 신장세를 기대했다.

이 상품이 가장 많이 팔리는 때는 12월과 2월. 조선호텔이 지난해 12월 성탄절을 겨냥해 내놓은 패키지는 출시 보름만에 다 나갔다. 이 호텔의 김선희 지배인은 "이번 밸런타인 데이가 평일인데도 상품 문의전화가 하루 30통 이상 걸려온다"고 말했다. 숙박 패키지 매출의 30% 정도가 연인 대상이라는 게 호텔업계의 추산이다.

'프러포즈 이벤트'도 중요한 로맨틱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아이스링크를 통째로 빌려 공개 프러포즈의 장소를 제공하는 그랜드하얏트호텔 이벤트는 지난해 12월 행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매일 예약이 이어진다. 음향.조명 사용료와 링크 대여료 등으로 10만~15만원 들고 꽃장식 같은 추가비용이 만만찮은 데도 그렇다.

유통업계도 로맨틱 마케팅에 축각을 곤두세웠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목동점이 25~30세 남성 고객의 지난해 잡화상품 구입 패턴을 분석해 봤더니 12월 지출이 두드러졌다.

잡화상품은 핸드백.장신구.화장품류 등 여성용 상품이 대부분이다. 이 백화점의 이희준 마케팅팀장은 "구매력이 생긴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성 고객들의 선물용 구매가 몰린 때문"으로 풀이했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의 이세진 박사는 "'2635세대'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표현에 솔직하기 때문에 최고라는 느낌을 받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과감히 지갑을 연다"고 말했다.

글=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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